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등 위법 행위가 적발된 금융 회사에 대한 공식 제재 절차에 착수한다. 금감원은 다음 주 위법 사항 등을 적시한 검사의견서를 금융사에 보내기로 했다. 이후 소명 절차를 거쳐 이른 시일 내 제재 조치를 확정한다.
관건은 제재 수위다. 최고경영자(CEO) 징계에 ‘조 단위’의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하거나 부당권유 행위를 했을 경우 판매 금액의 최대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금소법 도입 이후 은행권이 판 홍콩H지수 ELS는 17조1000억원가량으로, 이중 불완전 판매가 이뤄진 물량이 30%라고 가정하면 2조5000억원을 과징금으로 물어야 한다. 이는 은행 전체 배상 규모 2조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다음 주 홍콩H지수 ELS 판매 금융사에 검사의견서를 발송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가 법률적 조력을 받아 검사의견서를 자체 검토 후 소명 의견서를 보내오면 빠른 시일 내 제재 조치안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검사의견서는 금감원 검사국이 현장검사에서 적발한 법규 위반 사항을 명시한 것이다. 제재 대상 기관과 임직원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로, 공식적인 제재 절차의 첫 단계에 해당한다. 제재 대상이 이에 대한 소명 의견서를 보내오면, 이를 토대로 금감원 검사국은 제재 사전조치안을 만들고 이후 금감원장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제재를 확정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은행 5곳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투자·신한투자 등 증권사 6곳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두 달간의 검사를 통해 금융사의 조직적 불완전판매 정황을 확인하고, 금융사에 투자자 손실액의 20~60%를 차등 배상하라는 안을 제시했다.
은행권은 제재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 당국이 내부 통제 미흡 책임을 물어 CEO를 포함해 임원 제재까지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직원 성과평가지표(KPI)에 ELS 관련 배점을 높여 불완전 판매를 조장하고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문제가 다수 발견됐다고 했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사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를 어기면 과태료 같은 기관 제재는 물론 임직원 제재도 가능하다.
금감원은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때도 경영진의 내부통제 부실을 이유로 주요 은행 CEO에 ‘문책 경고’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문책 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과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다만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징계취소 소송을 내서 승소한 전례가 되풀이될 수 있는 만큼 금융 당국은 임원 제재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법원은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은 자율 규제 사항으로 CEO에게 중징계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과징금 부담도 만만찮다. 배상 규모와 맞먹는 수준의 조 단위 과징금을 물어야 할 수 있어서다. 은행별 ELS 판매액은 KB국민은행이 8조1972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신한은행(2조3701억원), NH농협은행(2조1310억원), 하나은행(2조1183억원), SC제일은행(1조2427억원), 우리은행(413억원) 순이다. 이중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등의 위법 행위를 통해 판매된 물량이 30%라고 가정하면 국민은행은 과징금으로 2조원가량을 내야 한다.
배임 우려에도 은행들이 자율 배상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율배상을 하면 제재 감경 요소로 고려하겠다”며 제재 수위를 정할 때 배상 등 금융사의 사후 수습 노력을 참작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지난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최대 100억원 규모의 자율 배상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27일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나머지 은행도 자율 배상을 결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