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로 수천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위기에 처하면서 KB금융지주의 ‘리딩뱅크’ 수성 목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KB금융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신한금융지주에 내준 1위를 되찾아왔으나, 올해는 ELS 배상 여파로 1위 수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취임 첫해부터 녹록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린 양종희 KB금융 회장의 어깨는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은 4조7447억원에 이른다. 홍콩H지수 하락에 따른 투자자 손실률을 50%로 가정해 단순 계산하면, 국민은행이 올해 상반기 배상해야 할 금액은 손실 배상 비율이 20%일 경우 4754억원, 30% 7117억원, 40% 9489억원, 50% 1조1862억원이다. 지난달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누적 손실률은 53.5%다.
투자자별 배상 비율은 제각각이지만, 지난 1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율 배상안을 그대로 따른다고 가정할 경우 평균 배상 비율은 30% 중후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이 은행에 적용한 기본 배상 비율의 중간값(25%)에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은행 가중값(10%)을 더한 수치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서 평균 손실 배상 비율을 34~37%로 추정했으며, 이에 따라 국민은행이 올해 6760억원을 배상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국민은행의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3조2615억원)의 20% 수준이다.
올해 금리 인하로 이자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천억원을 ELS 배상에 쓸 경우 국민은행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피치는 평균 배상 비율이 40%일 경우 올해 은행 영업이익은 최대 3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실적에 적용하면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조1000억대로 떨어지는 셈이다. 국민은행은 대손충당금(미리 손실로 처리하는 비용)을 지난해보다 덜 쌓는 방안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는 데다 취약 차주(돈 빌린 사람)의 연체율도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조6081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의 실적 악화로 KB금융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KB금융은 지난해 국민은행의 실적 호조에 힘입어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4조6319억원)을 냈다. 신한금융을 제치고 1년 만에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으나, 올해는 1위 수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 기준 KB금융의 올해 2분기(4~6월) 순이익 추정치는 1조4630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2분기(1조5048억원)보다 2.8% 줄어든 수준이다. 2분기 중 배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천억원 규모의 배상금이 영업외비용으로 반영되면 순이익은 1조원을 밑돌 것으로 보인다.
KB금융 입장에서는 실적과 직결된 만큼 홍콩H지수 ELS 배상 비율을 최대한 낮춰야 하지만, 자칫 고객 이탈이 가속화되고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수 있어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경영 키워드로 ‘상생 금융’을 내건 양 회장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양 회장은 지난 11월 취임식에서 “사회와 상생하는 경영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올해 1월 시무식에서는 “‘경쟁과 생존’이 아닌 ‘상생과 공존’으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은행은 금감원이 발표한 자율 배상안을 토대로 총배상 규모를 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융권에서는 3월 중에는 배상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배상안이 나오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에서 조속한 배상을 강조하고 있어 시간을 더 지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배상을 수용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조만간 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