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채권 발행액이 전년보다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5대 금융그룹 중 ESG채권 발행을 가장 크게 늘린 곳은 우리금융이었다. 민간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상생금융 강조가 ESG채권 발행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금융그룹의 ESG채권 발행 총액은 4조200억원이다. 이는 전년 발행액(3조270억원)과 비교해 9930억원(32.8%) 증가한 수치다. ESG채권은 ESG 개선 등 사회적 책임 투자를 목적으로 발행되는 채권이다. 채권을 찍어내 생기는 돈은 친환경 교통수단 개발, 중소기업 대출 및 소액금융 지원 등 특수 목적으로 활용된다. 채권 발행사는 ESG채권을 발행해 자금 조달을 이루는 동시에 ESG 경영활동을 부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지난해 5대 금융그룹의 ESG채권 발행액 증가는 우리금융이 주도했다. 우리금융의 ESG채권 발행 규모는 2022년 1조1200억원에서 2023년 1조9500억원으로 8300억원 불었다. 특히 우리카드가 지난해 채권 발행 규모를 대폭 키웠다. 우리카드는 2022년 6400억원에서 지난해 1조17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채권 발행을 늘렸다. 우리카드는 지난해 민간 금융사 중 가장 큰 규모로 ESG채권을 발행했다.
같은 기간, NH농협금융은 0원에서 5000억원으로, 하나금융은 4410억원에서 4700억원으로 ESG채권 발행액을 늘렸다. 반면 KB금융과 신한금융은 ESG채권 발행액을 각각 1조60억원에서 9300억원으로, 4600억원에서 1700억원으로 줄였다.
주요 금융사들의 ESG채권 발행 규모 성장은 ‘상생금융’ 보따리 풀기의 하나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권을 겨냥해 ‘돈 잔치’를 언급하며 상생금융을 우회적으로 지시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는 “소상공인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스스로 ‘은행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쉰다”고 은행권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두 차례 발언 직후마다 시중은행은 물론, 보험사와 카드사들까지 나서 각종 상생금융 정책을 선보였다. 지난해 ESG채권 발행 역시 정부의 상생금융 강조 속에서 이행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영세기업 금융 지원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와 투자자 발행 수요에 맞춰 지난해 ESG채권 발행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금융권 구조상 ESG채권 발행이 대폭 성장하긴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의견도 나온다. 조정삼 한국신용평가 재무평가본부 팀장은 “ESG채권이 성장성이나 발행기업 다변화 측면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성장성 측면에서 신규 발행사의 시장진입이 감소하고, 기존에 진입했던 발행사의 계속 발행도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 점차 소수의 발행사만 지속적으로 ESG채권을 발행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