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사외이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사회의 전문성을 높이라는 금융 당국의 주문에 따라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에 대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사외이사가 1년에 30시간도 채 되지 않는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얼마나 함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 사외이사 가운데 금융계에 종사하는 이는 약 2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은행권이 이사회 교육만 강화할 게 아니라 사외이사 선임 단계에서부터 전문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발표한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은행의 사외이사 교육 시간은 약 114시간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70시간)에 비해 62.4% 증가한 수치다. 은행당 평균 교육시간은 2022년 18시간에서 지난해 29시간으로 늘어났다.
사외이사 교육 횟수와 시간은 은행별로 편차가 컸다. KB국민은행은 사외이사 교육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은행으로, 지난해 47.7시간(10회)의 교육을 진행했다. 지난 2022년에는 22.5시간(9회)의 사외이사 교육을 실시했다.
이어 우리은행이 2022년 21시간(11회)의 사외이사 대상 교육을 진행하다가 지난해 31시간(13회)으로 교육시간을 늘렸다. 하나은행은 2022년 16.8시간(12회)의 사외이사 교육을 실시했다. 이마저도 신임 이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제외할 경우 사외이사 교육 시간은 8.8시간(8회)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사외이사 교육을 25시간(13회)으로 확대했다.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 횟수와 시간이 가장 적은 곳은 신한은행이었다. 신한은행은 2022년에 10시간(3회)의 사외이사 교육을 실시했고, 지난해 교육 횟수가 한 차례 늘긴 했지만, 시간은 10.5시간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은행권은 경제·금융, 회계 등에 한정됐던 교육 내용을 은행과 연관된 사업 부문까지 확장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석유화학산업 이해를 돕기 위해 LG화학 여수공장에 방문해 현장 연수를 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등은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사업과 자금세탁방지(AML)와 관련된 강연을 준비했다.
은행권의 사외이사 교육 강화는 금융 당국이 이사회 역할을 강화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우 주인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경영전략, 내부조직 및 지배구조, 리스크관리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이사회가 올바른 경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금융 당국은 이사회 대상의 교육을 확대하라고 요청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사외이사 교육 강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외이사에게 교육을 해봤자 전문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사외이사들은 많으면 한 달에 한 번, 적으면 세 달에 한 번 교육이나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않고서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은행권의 사외이사가 금융계에 속한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학계 출신인 경우가 37%로 가장 많고, 관료(12%), 비금융계(11%)가 뒤를 이었다. 특히 일부 은행은 사외이사의 75%가 학계에 종사할 정도로 편중이 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금융회사의 경우 사외이사가 대부분 금융권 경력자로 구성돼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다양성 제고는 경영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사 임면의 경우 실력주의·객관적 조건 등 경영감독 및 경영의사결정의 효과 제고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다양성은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맥락에서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