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해 6월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지난 21일 권씨를 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77조원 규모에 이르는 투자 피해를 낳은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으로 송환된다. 법조계에서는 미국이 금융 관련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권씨가 징역 100년 이상의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 권씨에 대한 형사소송이 시작되면 손해배상을 위한 피해자들의 민사소송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권씨는 사실상 종신형과 다름없는 형벌을 받아 교도소에서 여생을 보내며, 재무적으로도 파산 선고를 받게 되는 셈이다.

◇ 美 법원 "테라·루나는 증권"…권도형, 중형 피할 길 사라져

2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도형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검찰은 권씨를 증권 사기와 전신(wire) 사기, 상품 사기 등 총 8가지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권씨를 증권 사기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권씨에 대한 처벌의 핵심 근거는 테라·루나에 대해 미국 법원이 증권성이 있다고 규정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SEC는 무기명 증권 판매를 통해 최소 400억달러(약 53조원)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며, 권씨를 제소했다. 권씨는 "테라는 증권이 아닌 화폐"라고 반박했지만, 뉴욕 연방법원은 SEC의 주장을 받아들여 권씨의 증권법 위반 책임을 인정했다.

배심원단이 참여한 가운데 권씨의 형량을 정하는 선고공판은 다음 달 29일 열릴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권씨가 최대 1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경제 사범에 대한 형량이 최대 40년으로 규정돼 있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에 대해 독자적인 형을 확정한 후 이를 합산해 최종 형량을 정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금융 범죄자에게 종신형에 해당하는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린 사례가 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천문학적인 '폰지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버나드 메이도프는 재판에서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결국 2021년 교도소에서 눈을 감았다.

지난 2022년 11월 파산한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지난해 11월 열린 재판에서 사기와 횡령, 자금 세탁 등 7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뱅크먼-프리드의 형량을 정하는 재판은 다음 달 28일 열린다. CNBC는 법원이 유죄 혐의에 대해 모두 최대 형량을 내릴 경우 그 역시 최대 115년의 징역형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가상화폐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지난달 3일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연방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그는 사기와 자금 세탁 등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아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연합뉴스

◇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시작…은닉재산 추적이 관건

권씨가 미국으로 송환돼 형사 절차가 시작되면 미국의 테라·루나 투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이미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후인 지난 2022년 7월부터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미국 로펌인 BESPC는 권씨가 투자자들의 돈을 가로챘다며 연방증권법, 거래소법, 캘리포니아주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그를 캘리포니아북부법원에 고소했다. 당시 집단소송에는 2021년 5월부터 1년간 루나 등을 구매한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권씨가 미국 법정에 서게 될 경우 다른 현지 투자자들도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권씨의 구체적인 재산 규모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의 재산 대부분이 가상자산으로 은닉돼 있기 때문이다. 권씨는 지난해 미국 연방검사 출신 등이 소속된 초호화 변호인단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는데, 이를 두고 그가 최소 수천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SEC는 지난해 2월 권씨를 고발하면서 그가 1만개의 비트코인을 가상자산 지갑에 보관했고, 이를 주기적으로 스위스은행에 이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산의 대부분이 가상자산 지갑과 스위스은행 등에 나뉘어 있으면 제대로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씨에 대한 재판이 미국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이 배상을 받을 길은 더욱 멀어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