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들이 최근 무배당 상품만 판매해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펀드·채권에 투자한 뒤 나온 수익금을 보험사가 전부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유배당 보험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배당을 아예 하지 않는 무배당 상품만 주로 판매되고 있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보험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판매 중인 상품 가운데 유배당 보험은 하나도 없다. 보험업계 전체로 놓고 봐도 배당이 되는 연금보험 상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배당 상품이다.
무배당 상품의 장점은 유배당 상품과 비교해 보험료가 저렴하다. 미래에 받는 배당금을 포기하는 만큼 보험료를 할인받는 셈이다. 대신 미리 정해진 이율(공시이율)에 따른 이자만 받아야 한다.
반면 유배당 상품은 보험사가 낸 투자수익의 90%를 받을 수 있다. 질병·사망에 대한 보장은 물론 높은 수익률까지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 연금보험은 배당 여부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다만 보험료가 비싸고 중도 해지하면 해약환급금이 적다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국내 보험사들이 사실상 무배당 상품만 판매하고 있어 두 상품을 비교해 유리한 조건으로 가입할 수 있는 선택권조차 없다. 사실상 강제로 무배당 상품에만 가입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무배당 상품이 더 매력적이다. 고객이 낸 보험료로 주식·펀드에 투자해 올린 수익 전부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기준금리가 높은 상황에선 받은 보험료로 국채·회사채에만 투자해도 차익을 볼 수 있다. 투자환경이 악화돼도 배당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역마진 리스크도 줄어든다.
애초 국내 보험상품 전부는 유배당 상품이었다. 보험사들은 배당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로 경쟁했다. 고객의 보험료로 벌어들인 수익 중 일부는 당연히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1992년 7월 당시 재무부가 과열된 배당경쟁을 줄이겠다며 무배당 상품 판매를 허용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시장에 보험료가 저렴한 무배당 상품이 나오자 인기를 끌었고, 보험사는 유배당 비중을 줄이고 무배당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반면 해외는 여전히 유배당 상품이 주를 이룬다. 저축성보험은 물론 질병·사망을 보장하는 보장성보험조차 유배당이 많다. 암보험에 가입해도 암에 걸리지 않는다면 배당금이 꾸준히 적립돼 20~30년 뒤 환급금은 낸 보험료를 뛰어넘는 상품도 많다.
세계적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세계 50위 생명보험사’에서 삼성생명은 30위를 차지했는데, 31위인 미국 매사추세츠 뮤추얼 생명보험사는 2022년 18억5000만달러를 배당했다. 순위에도 들지 못하는 미국 생명보험사 가디언은 올해 보험 계약자에게 13억9800만달러의 배당금 할당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피치레이팅스에 따르면, 미국 생명보험사들의 배당 수용력은 2019년 247억달러에서 2020년 264억달러로 약 6% 증가했다.
국내 보험업계는 유배당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객들이 유배당 상품을 찾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험료가 비싸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무배당 상품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올리고 있어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유배당 상품을 판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보험사는 수십년 동안 투자로 올린 수익을 배당하고 있다”라며 “한국 보험사들이 배당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해외 보험사만큼 투자 실력이 없거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