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4조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빚을 갚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이 늘어나 연체율이 치솟자, 건전성 관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 부실 자산을 서둘러 털어낸 것으로 보인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은 지난해 4조2587억원의 부실채권을 상각 또는 매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1조7654억원)의 두 배를 넘어선 수준이다.
은행들은 연체율 관리를 위해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대출채권을 고정이하여신(NPL)으로 분류한다. 이후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떼인 자산으로 간주해 장부에서 지우거나(상각) 자산유동화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조치를 한다. 은행이 부실 채권을 처분하면 이 채권은 보유 자산에서 제외되는데, 이에 따라 연체율과 NPL 비율 등이 낮아지게 된다. 건전성 관리를 위한 최후의 방편인 셈이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지난해 1조1978억원의 부실채권을 상·매각해 가장 많은 물량을 털어냈다. 이는 전년(3783억원)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어 우리은행(1조1290억원), 신한은행(1조667억원), 국민은행(8652억원) 순이다.
특히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크게 늘었다. 하나은행의 경우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2022년 1757억원에서 지난해 8811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부실채권 7250억원어치를 팔았는데, 이는 전년(1340억원) 대비 5배가 넘는 수준이다. 은행 관계자는 “보통 신용 대출은 상각 처리를 하고, 부동산 등 담보가 있으면 채권을 매각한다”며 “개인과 기업의 담보 대출마저 부실이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공격적인 부실채권 상·매각으로 치솟던 은행 연체율은 다소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0.32%였던 우리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0.26%로 0.06%포인트 하락했다. 하나은행과 국민은행도 같은 기간 연체율이 0.03%포인트씩 낮아졌다. 두 은행의 지난해 말 연체율은 각각 0.26%, 0.22%다. 신한은행도 연체율이 0.25%에서 0.22%로 내렸다.
문제는 실질연체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질연체율은 부실채권 매각 또는 상각 처리 이전의 연체율을 뜻한다. 은행들은 매 분기 말(3·6·9·12월)에 주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는데, 직전 달의 연체율을 통해 실질연체율을 가늠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은행 대출 연체율은 0.46%로 한 달 전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1년 전보다는 0.19%포인트 상승했다. 2019년 11월(0.48%)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 부진이 지속되는 데다 예상보다 금리 인하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차주(돈 빌린 사람)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올해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건전성 관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여파로 건설업 여신 관리에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했다.
금감원은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체율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부실채권 상·매각 등 정리를 확대하도록 유도할 것이다”라며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를 통한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추진하며 선제적으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