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금융감독원 내에서 베테랑 실무진으로 꼽히는 수석조사역 직원들이 잇따라 금융권이나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수석조사역은 팀장 바로 아래 직위로 주로 입사 15~20년 차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실무진 중 연차가 가장 높은 만큼 업무 전문성이 축적돼 조직 내에서 핵심 인력으로 꼽힌다. 금감원 내부에선 수석조사역 유출로 조직의 업무 역량이 떨어진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8일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금감원 퇴직자(임원 제외) 수는 총 488명이다. 이 기간 가장 많은 퇴직자 직급은 2급(180명)이고, 그다음으로 많은 직급은 3급(130명)이다.

금감원 직급 체계는 1~6급으로 나뉜다. 대졸 신입사원은 5급부터, 고졸 신입사원은 6급부터 출발한다. 급수가 올라갈수록 직책을 맡게 되는데 말단인 조사역은 5급, 선임조사역은 4급, 수석조사역은 3급, 팀장은 2·3급, 국장은 주로 1·2급이 맡는 식이다.

금감원 내부에서 문제로 거론되는 현상은 3급 수석조사역의 퇴직과 그로 인한 업무 역량 저하다. 최근 6년간 3급 퇴직자 130명 중 수석조사역 퇴직자는 111명이다. 3급은 입사 15~20년 차 직원들로 분포돼 있다. 수석조사역은 팀장 바로 아래 위치에서 그간 쌓아온 경험을 실무 역량으로 발휘하는 자리다. 이러한 점에서 수석조사역은 금감원 조직 내 주요 직위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퇴직자 수만 놓고 비교하면 2급이 가장 많지만 2급은 입사 20년 차 이상으로 정년(만 60세)퇴직자가 섞여 있는 데다 국장 등 부서장을 맡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2급의 이탈은 실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게 내부의 전언이다.

수석조사역 대거 이탈이 발생하자 금감원 내에선 수석조사역 품귀 현상도 발생했다. 한 금감원 직원은 “최근 수석조사역은 귀한 존재라서 주요 부서나 팀이 아니면 아예 배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팀장과 선임조사역, 조사역으로만 이뤄진 팀도 있는데 이 경우 허리급 인력 없이 팀장 홀로 조직을 이끌어가 팀장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수석조사역의 이탈은 민간 금융사 대비 낮은 처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금감원 내부의 중론이다. 금융 당국에서 오래 경력을 쌓은 직원을 상대로 금융사들이 더 높은 연봉과 더 좋은 복리후생을 제시하며 베테랑 인력을 데려가려는 시도가 빈번하다. 금융 당국 출신 인력들은 민간 금융사나 로펌 등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금융정책에 대한 자문이나 대응 방안 등을 제공한다.

금감원 한 직원은 “금감원과 시중은행 직원이 같은 연차일 때 연봉을 비교하면 20~30% 차이 나는 것으로 안다”며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 나이가 너무 차지 않는 수석조사역들이 금융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는다”고 귀띔했다.

금감원의 인력 유출은 금감원의 업무 역량 저하를 넘어 감독 당국과 민간 금융회사의 유착 관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한규 의원은 “인력 유출도 문제지만 감독기관 출신으로 이해충돌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며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동시에 사실상의 전관예우를 막을 방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