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래 성장 동력이 되어줄 청년세대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고 치솟은 부동산 가격으로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들은 결국 빚에 허덕이다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청년세대를 인터뷰하면서 출발점의 차이로 청년들의 생활 수준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부모 집에 거주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삶의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방에서 혼자 상경해 월급을 쪼개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은 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조선비즈는 20~30대 청년세대 10명을 인터뷰하고 이를 토대로 가상의 청년 김철민, 이도영씨의 현재와 미래를 추적했다. 청년빈곤은 결국 중장년 빈곤, 노년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2년 전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김철민(29)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중소기업 영업직으로 취업했다. 입사 때 연봉 2800만원에 영업 성과에 따른 성과급 지급 등을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인사 담당자는 성과급이 최대 1000만원까지 나온다고 했다. 취업 후 학자금 대출 상환이 시작됐다. 매달 월급에서 40만원가량이 학자금 대출 상환에 쓰였다. 첫해 6개월은 사촌 형의 원룸에서 살다가 서울 관악구에 있는 월세 35만원짜리 고시텔로 이사했다.
철민씨는 지난달 입사 1년이 지나 인사 담당자와 연봉 협상을 했다. 담당자는 올해 회사의 매출이 역성장을 했다며 연봉 동결을 제시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도 했다. 기대했던 연말 성과급은 200만원이 입금됐다. 월급이 100만원이었던 3개월 수습 기간을 고려하면 김씨는 올해 세전으로 월 200만원도 받지 못했다. 실제 통장에 입금된 금액은 월 165만원가량이었다. 회사에선 김씨에게 영업 지역을 넓히기 위해 내년엔 차를 구매하면 좋다고 했다.
이도영(29)씨는 지난해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을 졸업한 뒤 한 외국계 보험회사 경영직으로 취업했다. 이씨는 취업 후에도 서울 송파구에 있는 부모 집에서 출퇴근했다. 대학 등록금은 아버지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학자금 대출도 없었다. 이씨의 초봉은 4800만원. 3개월의 신입사원 연수 기간에도 월급은 그대로 나왔다. 점심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저녁은 주로 집에서 먹는다. 차량이 필요하면 어머니의 차를 이용한다.
이씨는 연말 성과급을 포함해 매달 평균 40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다. 고정 지출은 보험료 20만원, 교통비 12만원, 용돈 80만원가량을 쓴다. 취업 후 부모의 조언에 따라 개인형 퇴직연금(IRP) 25만원, 주택청약 10만원, 청년희망적금 60만원 등 매달 95만원씩 저축하고 있다. 모든 지출을 하고 남은 돈은 월급 통장에 둔다. 입사 첫해만 1500만원가량을 저축했다. 이씨는 내년부터 주식 투자를 할 계획이다.
◇ 철민씨 “주거비가 가장 부담”
김씨는 서울 생활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비용이 주거비라고 했다. 김씨는 사촌형 집에서 나와 이사를 준비하면서 원룸을 알아봤으나 최소 월 60만원에 공과금은 별도였다. 50만원 이하인 원룸도 있었으나 옷장 하나 놓을 공간이 없을 만큼 좁았다. 결국 5㎡(1.5평) 남짓의 창문도 없는 고시텔을 택했다.
김씨의 월 지출은 150만원 정도다. 학자금 대출 40만원과 고시텔 월세 35만원이 가장 많은 지출이다. 영업을 위해 이동이 잦아 월 교통비로 30만원가량을 쓴다. 통신비 10만원, 식비와 용돈으로 25만원 정도 지출한다. 지인의 소개로 취업 후 실손보험에 가입해 8만원을 내고 있다.
주거 문제는 두 사람의 소득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한다. 김씨는 연봉이 오를 경우 원룸으로 이사할 계획을 하고 있다. 김씨가 알아본 결과 책상을 하나 놓으면 누울 자리도 부족한 원룸이 월 55만원에 달했다. 김씨의 세후 연봉은 약 2160만원. 원룸으로 이사하면 연봉의 30%가 주거비로 나간다. 공과금까지 고려하면 주거비가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저축할 여력이 없는 김씨는 결혼할 시점에 주택을 구할 목돈을 마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이씨는 부모 집에 살기 때문에 주거비나 식비 부담이 없다. 주거비로 나갈 수 있는 돈을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연봉 격차를 고려하더라도 서로 다른 주거 환경 차이가 삶의 질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의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이씨의 회사는 연평균 5.5~6%가량의 연봉을 인상해준다. 이씨는 10년 후 7700만~8000만원가량의 연봉을 받게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직장인의 연봉 인상률은 4.8%였다. 이 수치대로라면 김씨의 내년도 연봉은 2934만원이 돼야 한다. 연평균 5% 인상률을 적용해도 김씨는 10년 후 약 44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10년이 지나야 이씨의 초봉 수준이 된다. 현재 2000만원이었던 김씨와 이씨의 연봉 격차는 10년 후 최대 3600만원까지 늘어난다.
◇ 노후 준비는커녕 당장 내일도 장담 못 하는 삶
청년 빈곤의 가장 큰 문제는 중장년 빈곤, 노년 빈곤으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김씨의 경우 현재 저축할 여력이 부족해 노년은 물론 당장 내년을 준비할 계획도 없다. 당장 퇴사하면 다음 달 고시텔비나 휴대전화 요금도 낼 수 없다. 회사의 요구에 따라 차를 구매하게 되면 대출도 받아야 한다. 직장을 잃을 경우 김씨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버텨야 한다.
김씨가 지금 직장에서 언제까지 재직할지 알 수 없다. 인테리어 자제를 수입·판매하는 김씨의 직장에는 직원 2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회사 매출이 줄고 있어 퇴사자가 나오면 충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직원을 조금씩 감축하고 있다. 국내 근로자의 근속연수는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짧아진다. 2021년 기준 기업 규모별 근속연수는 5~9인 5.6년, 10~29인 5.7년, 30~99인 6.4년, 100~299인 7.5년 300~499인 8.7년, 500인 이상 11.2년이다. 김씨의 직장 역시 대부분 직원의 근속연수가 5년 미만이다.
이씨의 회사는 1년에 한 차례 희망퇴직을 받고 있지만, 보통 만 45세 이상부터 대상이다. 지난해 희망퇴직 때는 3년 치 월급을 특별 퇴직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이씨는 결혼 전까지 부모 집에 살면서 매해 저축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씨는 34세 전까지 순수 저축으로만 1억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IRP 납입액도 늘려나갈 생각이다. 이씨는 노년 때 국민연금 외 매달 100만원씩 추가 연금을 받는 것으로 노후를 설계했다. 이씨의 경우 당장 직장을 잃더라도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활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윳돈이 있다.
이씨는 34세 전후로 결혼하려고 한다. 신혼집을 구할 때도 부모의 금전적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김씨는 고공행진 중인 서울 부동산 가격 때문에 결혼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내년에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김형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은 전통적인 빈곤 기준인 소득 외에도 자산, 교육, 노동, 주거, 건강 등 다차원 영역에서 다양한 기회와 자원의 결핍을 경험하고 있다”며 “청년층의 높은 자산 빈곤율과 열악한 주거는 최근 청년층의 집단 내 불평등 수준이 더 커졌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