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승인한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예상보다 기관의 신규 자금 유입이 더딘 가운데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다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오는 4월로 예정된 반감기를 전후해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감기란 비트코인의 채굴량이 평소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시기를 뜻한다. 비트코인은 과거 세 차례 반감기를 지나면서 모두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 호재 소진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후 15% 하락

20일 오후 9시 기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0.2% 하락한 57610만원에 거래됐다.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소식이 전해진 지난 11일 비트코인은 최고 668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점차 약세를 보이며 15% 가까이 하락했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0월부터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출시를 허가해 달라며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한 후, 더 이상 승인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늘면서 매입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초 업비트에서 370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초 6000만원을 넘어서며 3개월 만에 60% 넘게 급등했다.

SEC의 현물 ETF 승인 결정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호재가 실현된 후 차익을 얻으려는 매물이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비트코인이 하락하는 동안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이 다음 현물 ETF 출시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며칠간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다.

SEC의 승인 결정이 나온 후 기존 비트코인 신탁에서 현물 ETF로 전환된 그레이스케일의 상품 계좌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JP모건은 지난 18일 그레이스케일 펀드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15억달러(2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면서 “앞으로 최대 100억달러가 더 유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상보다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 후 기관이나 가상자산 대량 보유자들의 매입 규모가 크지 않았던 점도 비트코인의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장 후 3거래일간 비트코인 현물 ETF의 자금 순유입 규모가 8억7100만달러에 그쳤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2021년 비트코인 선물 ETF가 출시된 후 첫 2거래일간의 유입액 10억달러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인 크립토퀀트의 주기영 대표도 지난 17일 조선비즈 가상자산 콘퍼런스에서 “아직 고래(가상자산 대량 보유자)들이 비트코인을 활발하게 매입하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과 거래를 공식 승인한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이후 약세를 이어가며 57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뉴스1

◇ ETF 매입 증가, 4월 반감기 맞물려 상승 전망 잇따라

가상자산업계와 금융 시장에서는 오는 4월로 예정된 비트코인의 반감기가 가격 흐름을 결정짓는 다음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감기는 지금껏 4년 주기로 도래했는데, 이 시기가 지난 후 1년여간 비트코인은 공급 물량 감소로 희소성이 높아져 가격이 크게 올랐다.

최초 반감기였던 2012년 11월 당시 12달러에 거래됐던 비트코인은 이듬해 가격이 1100달러를 넘어서며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급등했다. 비트코인은 두 번째 반감기인 2016년 7월 77만원에서 2017년 말에는 25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직전 반감기인 2020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비트코인 가격은 11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7배 넘게 올랐다.

이를 근거로 여러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4월 반감기를 지나면서 가격이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세 차례의 급등 효과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반감기가 도래하기 전 매입에 나서면서 가격 반등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기영 대표는 “현재 비트코인 하나를 채굴하는데 1만8900달러가 필요하지만, 반감기가 도래하면 2배 수준인 3만7000달러가 들어간다”면서 “새 비트코인의 공급 비용 증가는 기존 비트코인의 희소성을 높여 가격이 오르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말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해 말 가격인 5600만원선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와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여러 변수가 비트코인의 향후 가격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전문가들은 오는 3월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하가 늦어질 경우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