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중구 퍼시틱타워에 있는 법인보험대리점(GA) 굿리치 교육장엔 남녀 20여명이 모여 손해보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들은 보험 설계사로 일하기 위해 ‘굿리치 금융 캠퍼스’ 교육 과정에 지원해 선발됐다. 앳돼 보이는 23세 청년부터,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면서 경력이 단절된 42세 여성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조건희(24)씨는 군대 복무를 마친 뒤 다니던 대학교에서 자퇴, 보험 설계사로 일하기 위해 고향인 경상도에서 상경했다. 그는 “보험사 전속 설계사는 한 회사의 상품만 팔아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GA는 모든 보험상품을 다 비교·분석할 수 있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에겐 교육이 필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판매 조직을 떼어내는 이른바 ‘제판분리’ 후 GA의 영업력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외부 경력 설계사 영입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GA 중 하나인 굿리치는 반대로 신입 설계사 선발·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외부 영입보다 자체 인력 시스템을 통해 영업조직을 확대하는 게 실적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굿리치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등 수도권을 포함해 경상·충청·호남 등 권역별로 설계사 양성 과정인 굿리치 금융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 매월 50명씩, 총 500명을 선발해 교육을 진행한 뒤 영업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1년 동안 지원금과 고객 데이터베이스(DB)도 지원한다.
굿리치는 신입 설계사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있다. 단순히 보험에 대한 기초 지식을 넘어 고객 DB 접근법 등 영업력까지 키울 수 있을 교육과정을 신설하고 있다. 굿리치 관계자는 “최대 1년 동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설계사 정착률을 70% 이상 유지할 계획이다”라며 “영업 프로세스와 마케팅 툴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도 같이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신입 설계사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굿리치 문을 두드리는 무경력자가 많아지고 있다. 첫 교육과정에는 9명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한 기수마다 30명을 넘어설 정도다. 굿리치는 두 달에 한 번씩 교육을 진행하려 했으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GA에도 교육 과정은 있다. 하지만 전문 강사가 아닌 지점장·팀장 등 선배 설계사가 직접 교육하는 곳이 대다수다. 영업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거나, 선배 설계사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익히는 도제식 교육도 많다. 설계사들 사이에선 ‘회사보다 좋은 사수를 만나는 게 최고’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굿리치의 이러한 행보는 외부 설계사 영입에만 몰두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체 교육 시스템이 없는 GA는 ‘시책 경쟁’을 통해 외부 경력 설계사를 영입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이보다 무경험자를 직접 키워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것이다.
실제 굿리치의 금융 캠퍼스 교육을 받은 설계사들은 월평균 70만원의 실적을 올렸지만, 억대 연봉의 고능률 설계사를 제외한 일반 설계사의 실적은 월 50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6월 기준 굿리치 소속 설계사는 4243명이고, 이 중 138명이 금융 캠퍼스 교육을 받은 설계사다. 굿리치 관계자는 “순수 신인들을 선발해 원수사(보험사)에 준하는 지원을 통해 GA업계에선 시도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현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굿리치가 GA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굿리치의 인력 선발·교육 시스템이 정말 효과가 있고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GA도 여기에 뛰어드는 형태가 될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