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하자면 마차만 타는 세상에 자동차를 파는 격이었어요. 우리 프로그램을 소개하니 ‘나는 이미 마차에 익숙한데 자동차가 왜 필요해?’라는 식의 반응이 매번 돌아왔습니다. 수기(手記)에 익숙하니 전산의 필요성을 모르겠다는 것이죠. 해외에 다양한 선례가 있다는 사실과 우리 프로그램이 왜 유용한지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최동현(35) 쿼타랩 대표이사는 “처음 비상장 주식 관리 플랫폼을 선보이자 시장에서 보인 반응이다”라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최 대표는 “모든 회사가 비상장 주식을 엑셀로 관리하던 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산 관리 서비스를 개발해 소개하려니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전했다.
쿼타랩은 비상장 주식 관리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쿼타북을 개발한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이다.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인 쿼타북은 비상장사와 벤처캐피털(VC)에 투자자산 데이터 관리 기능을 제공한다. 비상장사는 자사의 투자자산을 쿼타북에 등록하면 스톡옵션 전자계약 체결, 주주명부 관리 및 투자 지분율 이력 확인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VC는 비상장사가 쿼타북에 입력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받아 포트폴리오 관리를 더욱 간편하게 할 수 있다. 과거엔 이 모든 과정이 종이나 엑셀 파일 위에서 이뤄졌다. 비상장사의 투자자산을 전산에 등록해 관리하는 프로그램은 쿼타북이 국내에서 최초다.
쿼타랩은 출범 직후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 2019년 말 6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80명 수준으로 몸집이 커졌다. 첫 해 결산 당시 쿼타랩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사는 100곳을 밑돌았고 쿼타북에 등록된 자산은 수십억원대에 불과했다. 불과 4년이 지난 현재, 쿼타북을 이용하는 고객사는 4400여곳에 달하며 관리 자산은 40조원 수준이다. 창업 첫해엔 매출이 없었으나 올해는 연간 매출액 80억원 돌파를 목표로 잡았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당근,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등 주요 스타트업이 쿼타북을 이용하고 있다.
쿼타랩을 창업한 최 대표는 미국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국내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이후 2017년부터는 카카오벤처스의 투자심사역으로 직업을 바꿨다. 투자업계에서 일하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던 그에게 어느 날 한 메일이 날아든다. 미국의 포트폴리오사(피투자사)가 보낸 주식 권리 증서와 주주명부였다. 일반적인 문서 형태가 아닌 특정 온라인 소프트웨어에 로그인해야 볼 수 있는 파일이었다. 최 대표가 비상장 주식 관리 플랫폼을 처음으로 접한 순간이었다.
지난달 9일 서울 강남구 쿼타랩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미국 포트폴리오사가 보낸 카르타(미국 기업이 만든 비상장사 자산 관리 플랫폼) 파일을 처음 봤을 땐 무척 신기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에선 비상장 주식 관리를 수기로만 하고 처리 과정도 모두 파편화돼 있는 게 당연했다”며 “카르타를 사용하다 보니 ‘국내에는 왜 이런 프로그램이 없을까’ 생각해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투자심사역으로 일할 당시 해외 비상장 주식 프로그램을 접하고 곧 창업에 뛰어들었다.
“2017년 투자심사역으로 일할 당시엔 투자업계는 모두 상장하지 않은 포트폴리오사의 증권을 관리할 때 엑셀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비상장 주식을 관리할 때 포트폴리오사 및 펀드출자자(LP)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번은 LP에게 보고하기 위해 한 포트폴리오사의 지분율 변화를 파악해야 했다. 그런데 포트폴리오사로부터 몇 달 동안 주주명부 이력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이후 카르타를 써보니 플랫폼에서 원장을 관리하고 과거 주주 이력도 열람할 수 있어 편리했다. 다만 미국 제도에 맞춰진 플랫폼이라 국내 시장에 그대로 쓰긴 어려웠고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국내 첫 비상장 주식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한 셈인데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상품을 개발한다는 위험부담도 따랐을 것 같다.
“2019년 중순쯤 창업에 대한 호기심이 처음 생기고 주변 스타트업과 VC에 아이디어를 들려줬다. 한입 모아 ‘그런 플랫폼이 있다면 정말 편리하겠다’라고 말하더라. 그런데도 왜 이제껏 관련 상품이 없었을까 생각하니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 난관이 많았다. 사업 초기 정착비용도 필요하고 영업도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다. 주주총회 의결 관리 시스템 등 기본적인 서비스 개발을 비롯해 쉬운 게 하나도 없는 도전이다. 다만 성공적으로 개발한다면 모든 스타트업들이 이 플랫폼을 쓰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수요가 충분하리라 봤다. 성공 가능성과 위험부담을 비교해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창업 직후 영업에서 겪은 어려움을 마차와 자동차에 비유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투자유치를 위해 투자설명회(IR)를 하러 어느 VC에 방문했다. 평소 IR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던 VC 대표가 그날은 IR에 들어왔다. 결국엔 그 VC의 투자심사에서 떨어졌는데 나중에 뒷얘기를 들으니 대표가 “대체 어느 기업이 주주명부 관리를 돈 내고 하느냐”고 말했다더라.(웃음) 2019년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고객사가 100곳도 안 될 정도로 비상장 주식 관리는 기업에 생소한 영역이었다.”
—올해 중순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다음 투자 라운드 계획도 구상 중인가.
“창업 이후 지금까지 6번의 투자를 진행했다. 올해 7월에 로고스시스템이라는 기업을 인수했다. 이번 인수합병(M&A)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겸 시리즈B를 유치했다. 주요 투자자는 TS인베스트먼트고 시리즈B로 투자받은 금액은 200억원을 웃돈다. 더 큰 규모의 사업을 펼친다면 내년쯤 추가 투자 유치를 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투자라운드를 유치하며 로고시스템을 인수한 이유가 궁금하다.
“로고스시스템은 벤처투자 설루션 플랫폼이다. 투자심의, 조합총회, 출자자별 출자배분 관리 등 업무집행조합원(GP)이 하는 다양한 투자 관련 업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할 수 있다. 또한 전자로 LP에게 보고하는 서비스 등 GP와 LP 간 소통이 필요한 업무를 보다 간편하게 처리하도록 돕는다. 쿼타랩의 사업 영역이 기존에 스타트업과 VC 업계였다면 로고스시스템을 인수해 GP와 LP도 아우르는 증권·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새로 고민하는 신사업이 있다면.
“4년 넘게 사업을 하다 보니 수많은 비상장 자산 데이터가 쌓였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여러 아이디어를 논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액의 스톡옵션을 보유한 개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자산운용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사업의 범위가 기업의 비상장 자산 데이터를 관리하는 수준이라면 앞으로 고객의 자산을 직접 운용하고자 한다. 현재 자산운용 사업을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다.”
—앞으로 사업 목표가 궁금하다.
“일단 내년은 쿼타북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한 해가 될 예정이다. 쿼타북 안에서도 전자주총 등 서비스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 또한 쿼타북과 전사자원관리 시스템(ERP)을 연결하는 등 제품 간 연동성을 높이는 작업도 중요하게 여기고 개발에 착수했다.
궁극적인 사업 목표는 비상장 자산 관련 업무를 할 때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도록 디지털화를 이루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현금 이체를 할 때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떠한 자산 유형이든 간편하고 빠르게 전산으로 관리 업무를 볼 수 있게 인프라를 만들고자 한다.”
☞최동현 쿼타랩 대표는
▲대원외국어고 ▲미국 카네기멜론대 전기컴퓨터공학 학사·석사 ▲다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바이널아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그루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카카오벤처스 투자심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