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과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HMM(011200) 경영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가운데 자금 조달을 위해 인수 주체로 나선 팬오션(028670)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팬오션의 주가 수준을 고려할 때 기존에 발행된 주식보다 많은 양의 신주를 찍어내야 할 전망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1조5000억~2조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팬오션 주식은 전날 유가증권시장에서 3850원에 장을 마쳤다. 전날보다 주가가 140원(3.5%) 내리면서 2020년 이후 처음으로 4000원선이 무너졌다. 팬오션이 20일 장 마감 후 경영권 인수 본계약 체결 전인 만큼 유상증자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공시했으나, HMM 인수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팬오션 지분 가치가 희석될 것을 우려하는 주주들의 우려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은 HMM 인수가로 약 6조4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6조400억원 가운데 최대 3조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하고, JKL파트너스가 7000억원 안팎을 부담하더라도 2조7000억원이 남는다. 이 돈을 인수 주체로 나선 팬오션이 영구채 발행이나 보유 선박 유동화 등으로 모두 조달하기는 어렵다. 조(兆) 단위 유상증자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팬오션의 시가총액이 2조1000억원대인 상황에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유상증자로 최소 2조원을 마련하려면 대규모 신주 발행이 불가피하다. 20일 기준 팬오션의 최근 30일 가중산술평균 주가(총거래대금 ÷ 총거래량)는 4375.8원이다. 유상증자 신주 할인율(20%)을 보수적으로 적용해도 5억7000만주가량을 발행해야 한다. 현재 발행된 팬오션 주식(5억3457만주)보다 더 많은 양이다.
팬오션이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가정할 때 최대 주주인 하림지주(003380)가 보유 지분(54.7%)만큼 청약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하림지주는 지난 9월 말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규모가 662억원이다. 하림지주가 부동산 자산 유동화 등으로 추가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그만큼 다른 기존 주주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만약 팬오션이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면, 개인투자자 등 기존 주주가 1조원 이상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대규모 자금 조달 이후 팬오션의 재무 상황은 나빠질 전망이다. 신용평가사 한국신용평가는 자금 조달 시나리오별 팬오션의 재무제표 변화를 추산한 결과 부채비율이 기존 62.9%에서 최대 102.8%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상증자로 1조5000억원만 조달했을 경우다. 유상증자로 2조원을 조달할 경우 부채비율이 88.6%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유증을 적게 하면 주주 타격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만큼 차입해야 하는 부채 규모가 늘어 부채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이 부담 요인인 셈이다.
HMM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림그룹이 과거 팬오션과 NS홈쇼핑 등을 인수한 뒤 이들 기업을 지렛대 삼아 다른 계열사를 지원해 준 사례가 있어서다. 팬오션 주주 입장에선 HMM 인수를 위해 투입한 자금을, HMM을 통해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 불확실한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에게 부담이다. HMM 1·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하림·JKL파트너스와 추가 협상 후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뒤 기업결합 심사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으로 계약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영증권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팬오션에 대한 분석을 중단하기로 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팬오션의 가치 회복의 기간이 1년 이상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명확한 주주가치 희석비율을 알 수 없단 점에서 이번 이슈를 바탕으로 팬오션에 대한 커버리지를 중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