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의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최근 거래 수수료를 폐지한 데 이어 지난해 말 국내 거래소로부터 상장 폐지 처분을 받았던 위믹스 코인의 거래 지원까지 재개하면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코인게코에 따르면 전날 거래량 기준으로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에서 빗썸의 점유율은 24%를 기록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운영사 두나무)는 1위를 지켰지만, 상반기에 90%를 웃돌았던 점유율은 73.5%로 하락했다. 코인원이 점유율 1.9%로 뒤를 이었고 코빗과 고팍스는 1%를 밑돌았다.
빗썸은 지난 2013년 12월 국내 최초로 설립된 가상자산거래소로 한 때 국내 시장에서 선두로 나섰던 업체다. 그러나 2017년 출범한 업비트에 1위 자리를 내줬고, 두 회사의 점유율 격차는 줄곧 벌어졌다.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 이후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되자, 투자자들은 1위 업체인 업비트로 몰렸고, 빗썸을 포함한 나머지 거래소들의 점유율은 계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빗썸은 지난 5월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매매 파문이 불거지면서 더욱 궁지에 몰렸다. 당시 김 의원은 다량의 코인을 빗썸의 전자지갑에 보유했는데, 빗썸이 이를 금융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실소유주 논란에 이어 다시 한번 사법 리스크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된 것이다. 지난 7월 기준 업비트의 점유율은 90%를 넘긴 반면, 빗썸은 10% 밑으로 떨어졌다.
추락하던 빗썸이 반격에 나선 것은 지난 9월 이정훈 빗썸홀딩스 의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한 이후부터다. 그가 지난 5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경영 일선에 돌아오면서 수수료 폐지와 기업공개(IPO), 위믹스 재상장 등 중요한 의사 결정이 빨라졌다.
비썸은 이 의장의 복귀 직후인 지난 10월 0.04~0.25%의 거래 수수료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은 대부분의 수익을 거래 수수료로 얻는데, 최근 점유율이 한자릿수까지 떨어지자, 주요 수익원을 포기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위믹스 코인을 재상장한 점도 빗썸의 반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게임 제작사 위메이드가 발행하는 가상화폐인 위믹스는 지난해 12월 유통량을 허위 공시한 점이 문제가 돼 5대 가상자산거래소 연합체인 닥사(DAXA)로부터 상장 폐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점유율 하락에 허덕이던 코인원과 고팍스, 코빗에 이어 빗썸도 지난 12일 위믹스에 대한 거래 지원을 재개했다.
위믹스는 P2E(Play to Earn·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게임에서 활용되는 코인 가운데 가장 거래량이 많다. 점유율이 1% 안팎에 머물고 있는 코인원, 고팍스, 코빗과 달리 2위 거래소인 빗썸은 거래 계좌를 보유한 고객이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위믹스의 거래가 재개되자, 투자자들이 주로 빗썸에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의 점유율이 최근 반등하면서, 1위를 독주해 온 업비트도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다만, 빗썸 등 다른 거래소들과 같이 위믹스를 재상장하거나, 수수료를 폐지하는 방안 등은 아직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대 점유율을 기록 중인 업비트는 사실상 DAXA의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DAXA가 위믹스의 상폐 결정을 내린 것도 업비트의 입김이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많다. 당시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도 기자 간담회에서 “위믹스의 상폐 결정은 업비트의 부당한 갑질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업비트마저 위믹스를 재상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수수료를 폐지하는 방안도 불공정 거래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한 투자자 단체는 지난 13일 빗썸이 수수료 무료 정책을 통해 경쟁 사업자들을 시장에서 배제하려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여전히 점유율이 70%를 웃돌고 있는 업비트도 수수료 폐지에 동참할 경우 투자자 단체는 물론 정치권이나 금융 당국 등이 문제를 삼을 가능성이 커진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시장에 다시 유입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수수료가 없는 빗썸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비트는 아직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점유율이 계속 하락할 경우 수수료 인하를 포함한 대응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