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질환수술비 1회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보험에 가입한 A씨는 2018년 12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5회에 걸쳐 티눈 냉동응고술을 받은 뒤 보험금 1500만원을 청구했다. 냉동응고술은 티눈을 얼려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치료다. 하지만 보험사는 냉동응고술이 보험약관상 ‘수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A씨는 결국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박석근 부장판사)는 “A씨에게 보험금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월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술 정의 규정상 (냉동응고술은) 절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약관해석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일부 보험사들이 법원의 판결과는 반대로 냉동응고술은 수술에 해당되지 않아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문구를 약관에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가 약관을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어 고객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조선비즈가 손해보험사 14곳의 약관을 살펴본 결과 4곳은 냉동응고술이 ‘수술에 해당되지 않는 수술’이라고 정의했다. 나머지 보험사도 대부분 “수술의 정의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보상되지 않는다”며 보험금 부지급 가능성을 열어놨다.
냉동응고술은 냉동분사기를 이용해 티눈 조직을 냉동시켜 괴사하게 만든 뒤 피부에서 탈락시키는 치료다. 칼 등 의료기구로 직접 피부를 절단·절제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티눈이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수술상 절제에 해당한다고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의 양승현・손민숙 연구원은 지난 16일 공개된 ‘수술 관련 분쟁 사례 연구’에서 “현재까지 법원 판결은 모두 (냉동을고술을) 약관상 수술의 행태적 정의 중 절제에 해당하는 것이라 보아 수술해당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21년 1월 냉동응고술을 받은 보험 가입자 B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에서 냉동응고술은 약관상 수술의 정의 중 특정 부위를 잘라 없애는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 보험사가 B씨에게 48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낸 판례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고액의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다수 보험에 가입한 사례로 냉동응고술이 수술에 해당되는지 여부와는 별개라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보험사들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문구를 약관에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도한 보험금 청구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풀이된다. 티눈은 완치가 쉽지 않고 재발이 많아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한다. 1회 치료 때마다 보상을 받을 수 있어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금융감독원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2021년 냉동응고술을 주요 과잉진료 항목으로 분류하고 심사강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냉동응고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 논란이 계속되자 보험업계 일각에선 냉동응고술을 수술로 인정해선 안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양승현・손민숙 연구원은 “냉동응고술이 외과적 수술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법원 판단에도 일응 수긍이 간다”면서도 “그것만으로 냉동응고술을 수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처럼 보험업계가 법원 판단에 따르지 않으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가 언제든 약관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받아야 할 보험금이 소액인 경우 소송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고, 보험사가 소송에서 패소해도 지연이자만 지급하면 돼 손해가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보험 관련 소송을 다수 진행한 한 변호사는 “약관에 고지가 돼있으면 소송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만큼 보험사가 이익이 된다”며 “냉동응고술은 수술에 해당돼 (보험금 부지급 결정이 나더라도)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