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A씨는 2012년 12월 골프 라운드에서 홀인원을 할 경우 축하 만찬 비용 등을 지급하는 골프보험에 가입했다. A씨는 2014년 12월 경남 사천시의 한 골프장 6번 홀에서 홀인원에 성공, 같은 해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5차례에 걸쳐 홀인원 축하 만찬 비용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제출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A씨 아내 명의 계좌로 보험금 5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보험사가 추가 조사에서 나서면서 A씨가 제출한 영수증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 결과, A씨는 음식값 등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곧바로 승인 취소하고, 승인된 영수증만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타냈던 것이다.

창원지법 진주지원은 A씨가 보험금을 타낸 지 약 7년 만인 2021년 12월 A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 주장처럼 실제로 축하 만찬 비용 등을 지출했는지 의문”이라며 “범행 수법과 내용이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홀인원에 성공해 축하 만찬과 기념품 구입을 한 것처럼 꾸민 허위영수증으로 보험금을 뜯어내는 사기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험금 수령자와 함께 골프를 쳤던 관계자의 제보나 특별한 의심 정황이 포착되지 않는 이상 사기 여부를 밝혀내기도 어려워 보험사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일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에서 최근 2년 사이 골프보험과 관련해 사기 또는 보험사기방지법 등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사례는 21건이다. 골프보험은 골프 라운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를 보장하고, 홀인원에 성공할 경우 축하 만찬·기념품 구입·기념식수·캐디 축의금 등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유죄가 선고된 사례를 보면, 수법 대부분은 허위영수증 제출이었다. 축하 만찬이나 기념품 구입 외 목적으로 결제한 영수증이나 결제를 취소한 뒤 승인된 영수증만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타내는 식이다.

2016년 9월 골프보험에 가입한 B씨는 이듬해 4월 전북 고창군의 한 골프장 8번 홀에서 홀인원을 하고 1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A씨는 7차례에 걸쳐 축하비용 등으로 1026만원을 결제했다며 영수증을 제출했다. 하지만 B씨가 골프보험에 3개나 가입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긴 보험사가 조사에 나서면서 범행이 탄로 났다. B씨는 골프 라운드 동반자와의 만찬이 아닌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던 영수증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 약관상 축하회는 홀인원 성공 시점에서 1개월 이내에 진행돼야 하고, 구입한 기념품도 동반경기자 등에게 전달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결국 B씨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애초 홀인원 보험은 정액형 담보였다. 홀인원에 성공할 경우 골프장에서 지급하는 ‘홀인원 증서’만 보험사에 제출하면 곧바로 300만~500만원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홀인원에 성공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내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2012년 골프보험 평균 손해율이 110%로 높아졌다. 같은 해 8월부터 4개월 동안 3회 이상 홀인원에 성공한 사례만 67명·264건이었고, 이들에게 총 8억9000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아마추어 골퍼 기준 홀인원 가능성은 0.008%다. 주 1회 라운드를 한다고 가정해도 홀인원을 하려면 약 57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하지만 클럽하우스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홀에서 골퍼 4명과 캐디 1명 등 5명만 공모하면 홀인원에 성공했다고 속일 수 있는 환경이다. 특히 스크린골프장의 경우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어 적발해 내기는 더욱 어렵다.

보험업계는 골프보험 손해율이 높아진 원인이 이처럼 조작된 홀인원이라고 판단, 보험을 실손형으로 전환해 축하 만찬과 기념품 비용에 대한 영수증을 제출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범행 수법은 자연스럽게 허위영수증 제출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사와 직접적 관계 없음. /캐롯손해보험 제공

골프보험 사기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기 여부를 적발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B씨처럼 동일한 보장을 제공하는 골프보험에 중복해 가입하거나, 짧은 기간 안에 홀인원에 여러 차례 성공하는 등 의심 정황이 포착되지 않으면 조사에 나서기 어렵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기 의심 정황을 제보받지 않는 이상 사기 여부를 적발해 내기가 쉽지 않다”며 “캐디와 다른 팀 멤버들이 서로 짜고 치면 밝혀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실제 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 C씨가 허위영수증을 제출해 홀인원 축하 비용 보험금 398만원을 수령했던 때는 2014년이지만, 범행이 적발돼 제재가 내려진 시점은 금융감독원이 기획조사에 나선 뒤인 올해 2월이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발각되기 어려운 셈이다.

다만 보험업계는 골프보험 손해율이 높더라도 손실이 크지 않는 상품이어서 판매 중단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골프보험은 가입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다른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업셀링’을 하거나, 마케팅 차원에서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손해보험사 상품의 특징이고, 홀인원으로 수천만원의 보험금이 지급되지도 않기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보지는 않는다”며 “사기가 많아져 고객의 도덕적 해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