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계획 중인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870원대까지 내려간 지난 3일 외화예금통장에 가입해 200만원을 엔화로 바꿨다. 최근에 출시된 ‘아이폰15 프로’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일본 내 판매가는 15만9800엔(약 139만원)으로 한국 판매가 155만원과 비교해 16만원가량 저렴하다. 일부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구매할 경우 10% 면세 혜택도 적용받을 수 있어 김씨는 일본에서 휴대전화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원·엔 환율이 15년여 만에 860원대까지 떨어지자 엔화를 대거 사들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본 여행이나 투자 목적으로 엔화 값이 쌀 때 돈을 미리 바꿔두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10조원에 육박했다. 11월 들어서 사흘 동안 약 5400억원이 엔화 예금 통장으로 몰렸다. 엔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엔테크(엔화+재테크)’에 대한 인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3일 기준 1조1110억엔(환율 868.52원 기준 약 9조637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4월 5978억엔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엔화 예금은 4월 이후 8개월째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지난 6월 9000억엔대로 올라선 뒤 9월 1조엔을 넘어섰다. 11월 들어 증가 폭은 더 커지고 있다. 3거래일에만 621억엔이 늘었다. 10월 한 달 동안 증가한 154억엔보다 4배 이상 많은 규모다.
일본은행(BOJ)이 나 홀로 금융 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엔화 가치가 급락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미국·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일본은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 현재까지 연 -0.1%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 초만 해도 100엔당 1000원대를 기록했던 원·엔 환율은 6월 900원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이달 들어 15년 10개월여 만에 880원대가 무너진 가운데, 전날엔 867.38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커지며 엔화 예금 잔액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 관계자는 “일본 여행 때 쓸 엔화를 쌀 때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대부분 은행이 환전 수수료 우대 혜택을 적용하고 있어 소액이라도 조금씩 환전해 놓는 20~30대 고객들이 많다”라고 했다.
환차익을 노린 투자자도 늘고 있다. 가령 1000만원을 엔화 예금에 넣었는데 환율이 10% 오를 경우, 환차익이 100만원 발생한다. 환율 변동에 따른 환차익은 비과세다. 다만 달러 예금 등과 달리 엔화 예금은 금리가 0%이다 보니 이자 소득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자에 부과되는 이자소득세도 당연히 없다. 원화를 엔화로 바꿀 때, 엔화를 원화로 바꿀 때 발생하는 환전 수수료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이용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은행은 우대 환율 등 다양한 혜택을 적용한 외화예금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달러화만 가입 가능했던 ‘바로 보는 외화 통장’에 엔화를 추가했다. 80% 환율 우대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환전한 외화를 국민은행의 환전서비스 ‘외화머니박스’에 입금하면 가까운 영업점에서 외화 수령이 가능하며 외화 현금수수료도 면제된다. Sh수협은행은 소액 환테크가 가능한 ‘Sh 똑똑 환테크 외화 적립 예금’을 내놨다. 최대 70%의 환율 우대를 받을 수 있으며 오는 12월 29일까지 목표 환율에 도달해 만기 이전에 자동 해지된 고객에게는 약정 이율로 환차익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