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거리의 대출 전단. /연합뉴스

신용대출이 약 2년째 감소세를 이어오다 10월에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연 7%에 육박하는 높은 대출금리에도 신용대출이 증가한 것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마련)’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다시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융 당국이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을 줄이기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 등의 판매를 중단했는데, 주담대가 막히자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가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신용대출을 받아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107조9424억원으로 전달(107조3409억원)보다 6081억원 늘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2021년 12월 139조5572억원까지 늘어난 뒤 올해 9월까지 1년 10개월 동안 감소했다. 보통 고금리가 이어질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진 차주(돈 빌린 사람)들은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우선 상환한다. 최근 6개월만 놓고 봐도 신용대출은 6월 7442억원, 7월 2461억원, 8월 2657억원, 9월 1조762억원 줄었다.

그런데 지난달 들어 갑자기 신용대출이 늘기 시작한 것은 투자 수요가 되살아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지난달 50년 만기 주담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40년으로 줄이며 대출 한도를 줄이고,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특례보금자리론의 자격 요건을 강화했다. 은행 관계자는 “주담대 규제로 대출 한도가 줄어든 차주가 부족한 돈을 신용대출을 통해 받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또 최근 코인 가격이 오르며 투자 수요를 부추기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할 것이란 기대감에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에만 30%가량 급등했다. 일각에선 현재 4800만원선에서 움직이는 비트코인이 2년 내 2억원대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최대 규모의 흥행을 기록한 두산로보틱스 공모주 청약에 자금이 몰리며 신용대출이 일시적으로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가계대출 억제에 나서며 은행이 주담대에 이어 신용대출 금리 문턱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9월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연 6.77%로, 전년 동기(6.46%) 대비 0.31%포인트 상승했다. 일부 은행의 경우 신용점수 951~1000점, 신용등급 1등급 차주에게 연 7%대 금리를 적용하기도 했다. 전북은행이 7.58%, 케이뱅크가 7.51%로 신용대출 금리가 높았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조달 금리 상승이 겹쳐 신용대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라며 “신용대출이 주담대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는지 자금 용처 등을 우선 잘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신용대출이 계속 늘어난다면 대출 문턱을 더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은 지난 2021년 부동산, 주식 투자를 위한 신용대출이 급증하자 시중은행에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수준으로 낮출 것을 주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