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제도 변경으로 증가한 보험사들의 이익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13일 영국에서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가진 투자자 행사에서 보험사 인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올해 들어 급증한 보험사의 순이익은 회계 제도가 바뀌면서 생긴 ‘착시’에 불과하다며, 제대로 실적이 나온 뒤 매물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최근 보험사의 3분기 실적이 발표되면서, 진 회장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주요 보험사 가운데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KB손해보험과 KB라이프생명은 전분기에 비해 순이익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다른 대형 보험사 역시 3분기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롯데손해보험과 MG손해보험, KDB생명, ABL생명 등 여러 보험사가 매물로 나와 있다. 실적 착시 현상이 사라지고 보험사의 기업 가치가 제대로 다시 평가를 받을 경우 가격 거품 논란이 제기된 일부 매물의 몸값도 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 KB손보, 3분기 이익 ‘반토막’…3대 손보사도 급감 전망
지난 25일 KB금융지주의 실적 발표에 따르면 KB손보의 3분기 순이익은 155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분기 순이익 2714억원과 비교해 42.9% 감소한 수치다. KB금융지주 내 계열사인 KB라이프생명도 같은 기간 순이익이 988억원에서 604억원으로 38.9% 줄었다.
KB손보와 KB라이프는 올해 들어 상반기까지 순이익이 급증하며 지주 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KB라이프의 경우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3.1% 증가한 2157억원에 달했다. KB손보는 KB국민은행 다음으로 많은 규모인 5252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상반기 순이익이 크게 늘어난 곳은 비단 KB금융지주 내 보험사뿐이 아니다. 올해 들어 새로운 회계 기준인 IFRS17이 도입되면서 대다수 보험사의 실적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개선됐다. IFRS17에서는 새 보험 계약의 미래 기대 수익을 처음에는 부채로 인식하지만, 계약이 계속 유지되면 시가 기준에 맞춰 부채를 줄인다. 이에 따라 계약 기간이 긴 상품의 판매 비중이 높을수록 이익이 급증하는 효과를 본다.
그러나 금융 당국이 최근 회계 기준에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의 장부상 순이익이 이상 급증했다는 지적이 늘자, 실적 부풀리기로 활용될 만한 요소를 조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3분기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B손보와 KB라이프 외에 다른 주요 보험사도 가이드라인이 반영된 3분기 순이익이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SK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삼성화재의 3분기 순이익이 421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30.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화재와 함께 3대 손보사로 꼽히는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도 같은 기간 각각 순이익이 37.3%, 11.9%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 드러난 실적 ‘민낯’…M&A 매물 몸값에도 영향
3분기부터 순이익 규모가 줄어들면서, 최근 M&A 시장에 나온 매물의 가치도 다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보험사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험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지 않은 우리금융지주와 보험업 경쟁력 강화를 노리는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여러 지주사가 인수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매물들의 예상 몸값이 치솟은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 상반기까지 보험사의 장부상 순이익이 크게 늘어난 점도 보험사의 가격 거품 논란이 제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진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등이 최근 보험사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발을 뺀 것도 이런 실적 착시에 대한 불신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사모펀드(PEF)의 경우 인수에 투입한 돈의 2배가 넘는 가격을 목표로 제시할 정도로 보험사의 몸값이 비싸게 평가되고 있다”면서 “조정된 3분기 실적으로 보험사 매물의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