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의 수출금융 한도 제한으로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방산 수출 2차 계약이 지지부진해지자 방산업체들이 시중은행과 금융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일부 은행이 폴란드 방산 수출을 위한 대주단 구성을 논의 중인데, 문제는 정부 기관 금융지원 대비 금리가 높아 폴란드 측이 난색을 보인다는 점이다.
수은 수출금융 한도를 확충하는 내용의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신중론이 나와 법안 처리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30일 금융권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산업체들이 은행권과 폴란드 방산 2차 수출을 위한 금융지원을 협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복수의 은행이 대주단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폴란드는 약 30조원 규모의 2차 계약 가운데 80% 수준의 금융 지원을 한국 측에 희망하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 국내 방산기업과 124억달러(약 17조원) 규모의 무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의 경(輕)전투기 FA-50,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의 K9 자주포, 현대로템(064350)의 K2 전차 등이다. 현재 1차 사업은 본계약을 체결하고 양산·납품이 진행되고 있다. 1차 사업 124억달러 가운데 80% 수준인 100억달러에 대해 정부가 직접대출 및 신용공여를 제공했다.
이번 계약 중 K9 자주포와 K2 전차 등은 계약을 1차와 2차로 나눠서 체결하기로 했다. 2차 사업은 약 30조원 규모로 애초 상반기 계약이 완료될 전망이었다. 그런데 2차 계약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보통 원자력 발전이나 무기, 사회간접자본(SOC) 등은 수출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수출하는 국가에서 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수출 국가의 금융공기업이 직접 대출을 해주거나 보증을 서는 방식이다.
그런데 1차 사업 금융지원을 담당했던 수은이 신용공여 한도 제한으로 2차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수출입은행법상 수은은 특정 대출자(대기업집단)에 대해 자기 자본(15조원)의 40%(6조원) 이상 대출할 수 없다. 수은은 1차 사업에서 5조원 가량의 신용공여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 한도를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폴란드 정부는 2차 사업도 1차와 비슷한 수준의 신용공여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려면 24조원의 신용공여가 필요하다.
정부 지원이 막히자 방산업체들은 결국 시중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 금융지원 대비 시중은행의 금리가 높은 편이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방산업계에서 나온다. 수은과 같은 정부 기관은 시중은행보다 조달비용도 저렴하고 낮은 마진으로 대출을 해줄 수 있다. 반면 시중은행은 이런 구조의 대출이 불가능하다. 폴란드 정부 역시 금리 문제로 국내 시중은행의 금융지원 방안에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중은행도 대주단 참여를 꺼리는 분위기다. 폴란드는 재정이 풍족한 국가가 아니라 조단위 대출이 나갔을 때 이를 회수할 방법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폴란드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A-’로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AA)에 비해 4단계 아래다. 금융권에서는 방산 펀드 조성으로 폴란드 무기 수출 사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와 금융권은 결국 법 개정을 통해 수은의 신용공여 한도 제한을 풀어야 폴란드 방산 수출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수은의 자본금 한도를 35조원으로 높이는 안과 정부 간 계약일 때는 신용공여 한도를 올려주는 안 등이 계류 중이다.
다만 수은법 개정을 놓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지난 24일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은법이 개정되면)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 다른 산업 분야에 대한 지원이 소홀해질 수 있다”고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도 “대기업은 수은에서 여신을 하지 않더라도 시중은행에서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있다”며 “수은은 중소기업에 더 많은 여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산업계에서는 수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될 경우 다른 국가에 계약을 뺏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무기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는 대부분 정부가 수입국에 무기와 금융을 패키지로 제공한다”며 “폴란드보다 신용등급이 훨씬 낮은 국가에 차관을 제공하거나 수출 무기 일부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방산 수출 후발주자라 이들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