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고금리와 경기 부진으로 대출 연체가 증가하면서 저축은행의 부실채권(NPL)이 증가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부실채권을 매각할 수 있는 문을 넓혀줬지만, 4개월째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금융권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실이 캠코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올해 저축은행권으로부터 사들인 무담보 채권액은 약 278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미 지난해 총인수액을 넘어선 규모다.

캠코가 저축은행으로부터 인수한 무담보 채권액은 매년 많아지고 있다. 2020년 430억원, 2021년 670억원으로 1000억원을 넘지 않았던 채권 인수액 규모는 지난해 2018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고금리·고물가 충격으로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긴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앞서 금융 당국은 2020년 금융사의 개인 무담보 연체 채권을 캠코에만 매각하도록 제한했다. 재정난에 빠진 개인 채무자에 대한 과잉 추심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실상 독과점 상태가 되자 매입 가격이 시장가 대비 30~50%로 낮아지는 문제가 생겼다. 저축은행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연체채권을 팔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보유하는 경우가 늘었다.

일러스트=손민균

저축은행 건전성이 악화하자 금융 당국은 결국 지난 7월 저축은행의 무담보 연체채권을 5개 민간 투자사에 매각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우리금융F&I·하나F&I·대신F&I·키움F&I·유암코 등 5개 사가 선정됐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매각은 단 한 차례로 진행되지 않았다. 연체채권의 규모·가격 등을 두고 민간 투자사와 저축은행이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축은행중앙회는 다수의 저축은행 채권을 묶어서 파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민간 투자사는 최소 1000억원 이상의 규모로 연체채권을 매입하길 원했지만 중소형 저축은행은 자산이 적어 매각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여러 저축은행의 연체채권을 모으면 민간 투자사가 원하는 규모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이 문제가 해결돼도 매각이 활발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민간 투자사는 저축은행으로부터 매입한 연체채권을 직접 추심할 수 없고, 제3자 재매각도 금지돼 큰 이익을 얻기 어렵다는 입장이다”라면서 “첫 매입 사례가 어떤 가격에 거래되느냐가 중요하기에 양측 협의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