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A씨는 2012년 한 대형 생명보험사의 변액종신보험에 가입했다. A씨는 보험설계사가 “가입 후 10년 동안 수익률이 200%가 넘는다. 납입 금액이 3억2000만원이면 나중에 5억원 이상이 되니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보험에 가입했다. A씨는 매월 약 270만원을 10년 동안 납부했다.

하지만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A씨 보험은 제대로 운용·관리되지 않았고, 손실을 보게 됐다. A씨는 담당자가 퇴사했다는 것을 만기 약 1년 전에 알게 됐다. A씨는 “설계사 설명대로 가입한 것”이라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설계사의 잦은 이직·퇴직 등으로 보험 계약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고아계약’을 예방하기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아계약에 따른 보험해지와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선 보험회사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6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평균 13월차 설계사등록정착률은 각각 35.9%와 52.5%다. 설계사등록정착률은 설계사가 신규등록 후 1년 이상 정상적으로 보험모집활동에 종사하는 인원의 비율을 뜻한다. 생명보험사 기준 설계사 10명 중 6명은 1년 안에 퇴직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는 뜻이다.

생명보험 설계사 정착률은 2020년 84.8%까지 치솟았으나, 이듬해 41.2%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39%로 2019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단순 계산하면 매년 보험계약 10건 중 5~6건이 고아계약이 되는 셈이다. 손해보험 설계사 정착률은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생명보험 설계사들의 정착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생명보험업계의 불황과 연결돼 있다. 생명보험의 주력상품인 저축성 보험이 새 회계제도(IFRS17) 아래에선 수익에 불리한 상품이 됐고, 종신보험 인기는 날로 떨어지면서 손해보험업계로 이동해 보험을 판매하려는 설계사가 늘었다. 자회사형 보험대리점(GA)들이 고액의 정착지원금을 제시하는 등 설계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잦은 이직에 영향을 미쳤다.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명보험사 주력상품이 약해지면서 손해보험이 더 유리한 형국에 돼 상품 팔기가 쉽지 않아졌다”며 “지난해부터 GA로 설계사가 다수 이동해 정착률이 낮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정서희

이 때문에 고아계약과 관련된 민원은 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선 믿고 맡겼던 설계사가 없어지면서 보험 계약이 방치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미 이직·퇴직한 설계사들은 잔여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적극적인 고객 관리에 나서기는 힘들다. 통상 다른 설계사가 계약을 대신 담당하게 되지만 관리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고아계약이 늘어날수록 불완전판매비율이 늘어나고 계약유지율은 낮아진다고 보고 있다. 생명보험정착률은 손해보험보다 약 15~17%포인트 높은데,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생명보험 불완전판매비율은 0.18%로 손해보험(0.06%)보다 3배 높았다. 13회차 유지율 역시 개인생명보험이 83.9%로 장기손해보험(86.3%)보다 낮다.

전문가들은 보험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껏 고아계약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장기근속 설계사 우대와 유지율에 따른 인센티브 제고, 고아계약 전담 관리 조직 운영 등이 제시돼 왔다.

보험연구원의 김동겸 선임연구위원은 “설계사가 이직하는 건 개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강제로 어떤 방법을 취하기는 힘든 것 같다”며 “계약 유지를 하면 회사 차원에서 이익이 된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고, 설령 설계사가 이탈을 한다고 하더라도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