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시장에서 업비트 독주 체제를 깨기 위한 가상자산거래소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빗썸은 발 빠르게 수수료 0원이라는 모험적인 정책을 내놓으며 점유율 반등에 성공했다. 가상자산업계는 빗썸의 점유율 확보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보면서도 수수료 감면에는 망설이고 있다. 마땅한 매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수입이 없어지는 수수료 무료 정책을 따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13일 가상자산 분석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5대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 중 빗썸의 지난 10일 거래금액 비중은 22.3%다. 일주일 전인 지난 3일(13.3%)과 비교하면 9%포인트 상승했다. 빗썸은 지난 4일 오후 6시부터, 모든 가상자산 거래 수수료를 0원으로 바꾸는 이벤트를 시행했다. 이번 수수료 무료 이벤트는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별도 공지 전까지 유지된다. 이벤트 직후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빗썸의 점유율은 지난 9일, 28.5%까지 치솟는 등 일주일째 20%대로 올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빗썸의 수수료 무료 정책은 업비트의 독주체제를 막기 위한 방편이다. 빗썸의 수수료 무료 정책 시행 전 업비트의 거래 비중은 80% 중반 가까이였다. 빗썸이 수수료 전면 무료를 시행하자 한때 점유율이 70.5%로 내려앉는 등 이전보다 소폭 깎였다. 업비트는 지난해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어 가상자산 지갑 개설 편의성을 갖추면서 업계 1위로 도약하고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비트의 독주를 막기 위한 노력은 빗썸만이 아니다. 코빗은 지난달 25일 오후 4시부터 원화 입금 한도를 1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렸다. 애초 내년 3월에 거래소마다 일일 입금한도를 500만원으로 통일하는 업데이트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코빗은 반년가량 앞당겨 먼저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다만 코빗의 시도는 효과가 미미하다. 코빗의 현재 시장 점유율은 정책 시행 전과 비슷한 0.1~0.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입금 한도를 대폭 올렸지만 다른 거래소의 입금 한도는 이미 500만원 수준이어서 별다른 경쟁 효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빗썸과 코빗의 엇갈린 성적표를 두고 업계에선 ‘수수료 무료’라는 제 살 깎아 먹기 정책만이 점유율 확보의 해답이란 말도 나온다. 그러나 다른 거래소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을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의 자본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거래소 중 영업이익을 낸 곳은 업비트와 빗썸뿐이다. 빗썸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매출의 99.95%를 차지하는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전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빗썸의 이익잉여금은 1조1468억원으로 이는 업계 3위 코인원의 지난해 말 이익잉여금(680억원)과 비교해 17배가량 많다.
한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빗썸의 경우 자본금이 충분해 수수료 무료 정책을 실시했지만 다른 거래소는 쉽게 수입을 없애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며 “규모가 작은 거래소는 자본잠식에 가까운 상태다”라고 말했다.
각 사마다 얽힌 사정으로 수수료 인하를 따라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팍스는 현재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사업자 변경 승인이 나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있다. FIU의 승인이 나오지 않는 배경엔 고팍스 대주주인 바이낸스의 국내 진출을 금융 당국이 꺼리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코스닥시장 상장사 시티랩스가 54억원을 들여 고팍스의 지분을 사들이는 등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코인원은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붙잡는다. 거래소 수수료가 없어지면 마켓메이킹(MM)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MM은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부풀리거나 인위적으로 코인 가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코인원은 이미 MM으로 임직원이 실형을 받은 사례가 있다. 한 가상자산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는 “수수료가 없어지면 시세 조작 세력의 개입 가능성이 커지는데 한 차례 시세조작으로 곤욕을 치른 코인원에서 굳이 위험부담을 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