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4대 시중은행의 잠재 부실이 7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재 부실을 의미하는 ‘요주의’ 여신(대출)은 연체 기간이 3개월 미만으로 당장 부실채권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언제든 부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대출이다.

문제는 고금리 기조 장기화에 경기 침체까지 겹쳐 차주(돈 빌린 사람)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뿐 아니라 조달·사업비용이 급증하면서 한계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에게 지원해 온 이자 상환 유예가 종료되면서 대출 부실 우려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준 요주의여신 총액은 6조8483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6조2642억원)보다 9.3% 늘었다. 지난 2018년 3분기 이후 최대치다. 은행별로는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은행의 요주의여신 규모가 2조7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하나은행(1조8260억원), KB국민은행(1조3970억원), 신한은행(1조2160억원) 순이다. 증가율은 KB국민은행이 14.5%(2020억원)로 가장 높았다. 하나은행은 같은 기간 요주의여신 규모가 2.5% 줄었다.

요주의여신은 여신 분류 기준상 ‘고정’ 이하로 부실화가 진행되기 직전 단계여서 상황에 따라 언제든 부실화할 수 있는 잠재 부실 대출이다. 은행 여신은 부실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5단계로 나뉜다. 이 중에서 연체 기간이 3개월을 넘는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대출은 돈 떼일 염려가 크다는 의미에서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리해 관리한다.

통상 은행의 자산건전성 지표로 고정이하여신비율이 활용되지만 잠재 부실 가능성까지 파악하기 위해선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을 보는 게 더 효과적이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현재의 부실채권 수준만 알 수 있을 뿐 잠재부실 가능성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피치,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물론 국내 신평사들도 고정이하여신비율과 함께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을 주요 지표로 반영하고 있다.

4대 은행의 요주의이하여신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은행이 1.0%로 가장 높았으며 하나은행(0.8%), 신한은행(0.7%), 국민은행(0.6%)이 뒤를 이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신한은행이 0.3%였으며, 나머지 은행은 모두 0.2%다.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앞. /연합뉴스

은행권은 잠재 부실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9월 말 이자 상환 유예가 종료됨에 따라 하반기 취약 자영업자·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최근 “시중 금리가 높고 거시경제 위험성도 커지고 있어 자영업자, 중소기업 위주로 대출 연체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은행들은 잠재 부실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위기 대응 전담팀을 꾸리고 부실 위험을 조기 감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반기 대출 연체가 늘고 있는 가운데 부실채권은 대거 상각·매각해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부실 채권이 될 수 있는 요주의 여신이 빠르게 늘고 있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부실 위험을 조기에 감지해 선제적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고 했다.

또 손실 흡수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있다. 여신 분류가 요주의에서 고정 이하로 넘어가면 대손충당금을 현재보다 더 많이 쌓아야 한다. 정상은 0.5%, 요주의는 1%를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하지만, 고정은 20%, 회수의문은 75%, 추정손실은 100%를 적립하도록 돼 있다.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두는 것인데, 그 규모가 커지면 비용이 늘어 순이익이 감소한다. 올해 상반기 4대 은행의 대손충당금 전입액은 2조1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3.8%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