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9)씨는 지난해 9월 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의원에서 오른쪽 눈에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이른바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당시 A씨는 부작용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는 의사 결정에 따라 입원해 수술을 받은 뒤 당일 퇴원했다. 진료비 등은 430만원으로 급여·본인부담금을 제외한 비급여는 330만원이었다.
10여년 전 실손보험에 가입한 A씨는 KB손해보험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A씨가 받은 백내장 수술은 입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치료여서 통원의료비 한도만 적용된다는 주장이었다. A씨는 “전문의 소견에 따라 입원을 한 건데, 보험회사에서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수술이라고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판단을 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했다.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보험사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보험사가 백내장 수술은 입원 치료가 아닌 통원 치료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례가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도 지급이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26일 ‘실손보험 소비자권리 찾기 시민연대’에 따르면, 이 단체를 통해 백내장 수술 보험금 소송에 참여한 환자는 이날 기준 2000명을 넘어섰다. 이 단체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까지 더하면 유사한 소송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체 관계자는 “보험금을 못 받은 사람은 전국적으로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갈등의 쟁점은 백내장 수술이 입원 치료인지 여부다. 백내장 수술이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통원 치료라면, 보험금은 통원의료비 한도가 적용돼 25만원만 지급된다. 반면 입원 치료의 경우 5000만원 한도가 적용된다. 백내장 수술을 어떤 치료로 볼 것이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보험사는 지난해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이 나온 뒤부터 백내장 수술은 통원 치료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보험사가 근거로 드는 사례는 현대해상이 자사 실손보험 가입자 B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입원 치료가 인정되려면 B씨가 자택 등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최소 6시간 이상 입원실에 머물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B씨가 실제 받은 치료는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보험 약관상 ‘입원’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B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쟁점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없기 때문에 유사 사건에 대한 구속력을 가지는 ‘대법원 판례’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환자들은 보험사들이 구속력 없는 심리불속행 기각 사건을 마치 확정된 대법원 판례인 것처럼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 거절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 판단과 정 반대 결론이 난 하급심 판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부산지방법원은 한 보험회사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C씨에게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C씨 승소 판결한 원심을 유지, 백내장 수술에 따른 보험금 899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남부지법도 이달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보험금을 받지 못한 환자 3명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모두 백내장 수술을 입원 치료로 인정했다.
환자들은 백내장 수술이 국민건강보험법상 포괄수가제 적용을 받는 치료인 만큼 보험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환자가 입원해 퇴원할 때까지 발생하는 진료에 대해 미리 정해진 금액을 내는 제도다. 2~3시간 만에 수술을 받고 퇴원하더라도 포괄해 입원 치료비가 지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경인 실손보험 소비자권리 찾기 시민연대 대표는 “보험사 주장대로 백내장 수술이 통원 치료라면 포괄수가제를 인정해 보험금을 지급한 게 전부 다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소송을 해서 이기면 (보험금을) 받아 가라는 것인데, 보험사가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굳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