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담대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금리 장기화’를 예고한 뒤 국내외 채권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채권금리가 올라가면 은행은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은행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대출 금리도 오르게 된다. 이자 부담이 커진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한 사람)’을 중심으로 가계 대출 부실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주택 경기가 살아나며 주택담보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고정형(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전날 연 3.90~6.47%로 금리 상승세가 다소 둔화됐던 지난 4월 말(연 3.76~5.86%)보다 상단이 0.61%포인트 올랐다. 주담대는 고정형과 변동형으로 나뉘는데, 고정형은 은행채, 변동형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연동돼 금리가 결정된다. 지난 7월 말 기준 주담대 고정금리 비중은 73%다.

은행채 5년물 금리가 이달 들어 빠르게 오르며 고정형 주담대 금리를 밀어 올렸다. 은행채(AAA·무보증) 5년물 금리는 전날 연 4.517%로 집계됐다. 6개월 내 최고치다. 지난 4월 말엔 연 3.941%였다. 이 와중에 연준이 긴축 장기화를 예고하면서 금리 상승 압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미국 국채 시장에서 시장금리 지표로 여겨지는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날 연 4.48%를 돌파해 2007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가 조만간 7%를 돌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정서희

문제는 주택 경기 회복세에 주담대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 5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주담대 잔액은 지난 14일 기준 515조6173억원으로 8월 말(514조9997억원) 대비 6176억원 늘었다. 8월엔 1조5912억원 늘었다. 2021년 11월(2조3622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치다.

영끌족들의 원리금(원금+이자) 상환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대출을 끼고 중간 가격대의 집을 마련한 사람은 매월 가구 소득의 절반가량을 빚을 갚는 데 써야 하는 상황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175.5로, 이는 중간소득가구가 표준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월 소득의 44%를 주담대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 예·적금 만기 일정이 몰려있어 은행 조달비용 증가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도 우려된다”라며 “원리금 상환 계획을 보수적으로 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1년 전 ‘레고랜드 사태’ 때 유치했던 고금리 예금의 만기시점이 대거 도래함에 따라 은행권 수신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예금금리 상승은 곧 은행의 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대출금리를 끌어올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11월 3개월 사이 불어난 금융회사 정기예금은 116조400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