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최근 유병력자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가입 문턱을 낮추고, 보험료를 인하하면서 고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출산으로 전체 고객 수는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로 ‘유병장수’ 시대가 되면서 고령 유병력자가 보험업계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유병자 보험이 보험업계의 ‘뉴노멀’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건통계 2023에 따르면, 한국인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38개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길다. 1990년 71.7년에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유병장수’ 시대라는 점이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의료비 지출도 늘어났다. 지난해 발표된 ‘2021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65세 이상 진료비는 41조3829억원으로 2020년 37조6135억원에 비해 10% 증가했다. 65세 이상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509만원이다. 부부 2명이라면 1년 진료비만 1000만원이 넘게 지출되는 것이다.
보험사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유병자 보험’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병력질문을 간소화한 ‘간편심사제도’로 가입 문턱을 낮추고, 가입 후 3년 동안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경우 무병력자와 비슷한 수준의 보험료를 내는 ‘무사고 할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보험료 인하 조건을 내걸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 1일 유병력자·고령자가 손쉽게 가입할 수 있는 ‘교보간편가입암보험’을 출시했다. 세 가지 고지항목에 해당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있도록 했고, 월 보험료는 40세 남성 기준 갱신형 3만1250원, 비갱신형 13만500원으로 기존에 판매하던 유병자 보험보다 보험료를 낮췄다는 설명이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는 거의 가입이 거절됐다”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근 2~3년 사이 무사고 할인을 내놓기 시작했고, 헬스케어 분야와 접목해 건강검진을 받으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방식도 있다”고 전했다.
유병력자는 사실 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웠다. 설령 보험 가입에 성공해도 무병력자보다 위험률이 높아 최대 2배 가까운 보험료를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병력자가 보험업계의 주요 고객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계출산율이 0.77명에 불과해 새롭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고객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질병 이력이 있는 고령층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 유병력자의 보험 가입을 거절하면, 새로운 보험 수요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생명보험사 외에도 손해보험사까지 유병자 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한화손보는 이달 병력이 있는 고객도 가입할 수 있는 ‘한화 시그니처 여성355 간편건강보험’을 출시했다. 지난 7월 ‘한화 시그니처 여성 건강보험’을 출시한 지 2개월 만에 새로운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또 다른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생보사들은 단기납 종신보험 등을 많이 판매해 왔는데, 고객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병자 보험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며 “보험료를 낮추면서 보장을 늘릴 수 있는 (유병자 보험) 상품을 내놓는 경향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