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하기로 결정한 1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담대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꼽히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나섰다. 한데 일부 상환 능력이 있는 차주(돈 빌리는 사람)에 한해 예외적으로 50년 만기를 적용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 은행들이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은행이 개개인의 미래 상환 능력을 파악해 입증하라는 것인데, 금융 당국의 뚜렷한 지침이 없는 데다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어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지난 13일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유지는 하되, 차주가 대출을 받을 때 실제론 50년간 돈을 갚지만 만기는 40년이라고 가정하고 대출 한도를 계산하는 내용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시행했다. 그러면서 20~30대 청년층이나 연금과 같이 노후 소득이 확실히 있는 중·장년층 등 ‘상환 능력이 명백히 입증되는 자’에 한해 예외로 50년 만기를 적용하도록 했다.

규제의 ‘유연함’을 위해 일률적인 심사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금융 당국 측의 설명이나, 은행들은 당장 차주의 상환 능력을 어떤 기준으로 입증해야 할지 고민이 큰 상황이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에서 개개인의 미래 상환 능력을 입증하라는 것인데, 어떤 기준을 적용해 판단해야 할지 명확한 지침이 없으니 고민이 많다”며 “다양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라고 했다.

은행들은 미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B은행 관계자는 “가령 한 개인의 현재 대출 상환 능력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소득세 등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그 개인이 50년간 어느 정도의 현금을 창출할 수 있을지 계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평균 소득증가율로 계산해 현금 흐름을 가정해 볼 수 있으나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세밀하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은행들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정책금융상품으로부터 출발한 만큼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하기보다 주택금융공사의 50년 만기 주담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주금공에서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는 ‘청년층’과 ‘신혼부부’만 대상으로 한정한다. 다만 ‘나이 제한’ 방식은 도입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수요자 역차별 논란 등을 의식해서다.

금융감독원이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40대 이상 비중이 70% 이상이었다. 40~50대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액이 4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57.1%를 차지했다. 60대 이상은 12.9%(1조1000억원)다. 30대 이하가 받은 대출 금액은 2조5000억원(29.9%)으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현재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시중은행을 모아 차주의 미래 상환 능력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C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융 당국과 논의 중이며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은행권 공통 지침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일각에선 모호한 기준을 적용해 문제가 될 바에는 은행이 대출 심사를 소극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50년 만기 적용 혜택을 받는 차주가 적을 것이라는 것이다. D은행 관계자는 “가계 대출을 줄이라고 50년 만기 주담대 규제를 적용한 것인데 굳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출을 내줄 필요가 없어 보인다”라며 “보수적으로 대출이 나갈 수밖에 없고 50년 만기 예외 적용 사례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태훈 금융위원회 거시금융팀장은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차주의 상환 능력을 심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은행의 업무다”라며 “금융 당국이 DSR에 대한 기준 등을 정해줄 수 있지만 차주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은행이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를 활용해 판단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