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여러 보험사가 매물로 나오면서 달아올랐던 인수합병(M&A) 시장의 열기가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 인수에 앞장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우리금융지주가 최근 증권사를 인수하는 데 우선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전 흥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10일 금융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말 한 행사에서 비은행 회사 인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증권사 인수는 계속 추진하겠지만, 보험사와 카드사는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금융지주사 중 유일하게 증권사와 보험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지 않은 곳이다. 과거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아비바생명을 운영했지만, 지난 2014년 정부의 뜻에 따라 두 회사를 모두 NH농협금융지주에 매각했다. 당시 NH농협금융의 회장으로 증권과 보험사 인수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임종룡 회장이다.
우리금융은 4대 금융지주사 중 올해 가장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2%, 16.6% 늘어난 반면 우리금융은 반대로 12.7% 감소한 것이다. 다른 지주사들은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를 통해 수익원을 확보했지만, 우리금융은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이 대손충당금 적립과 영업 부진 등으로 순이익이 감소하면서 실적 방어에 실패했다.
특히 KB금융의 경우 보험 계열사인 KB손해보험과 KB라이프생명이 선전하면서 전체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KB손보와 KB라이프의 합산 순이익은 740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5% 증가했다. KB금융 전체 순이익에서 두 보험사가 차지한 비중은 24.7%에 달했다. 우리금융이 보험사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것도 보험사를 통해 재미를 본 KB금융의 사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 보험사 M&A 시장에서 매각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매물은 KDB생명과 ABL생명이다. MG손해보험도 지난달 28일 인수자 선정을 위한 예비 입찰 공고를 내면서 매각 절차가 재개됐다. 여기에 롯데손해보험과 동양생명 등도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매각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MG손보와 롯데손보는 여러 지주사의 관심을 보일 만한 매물로 꼽혔다. 생보사들이 저출산·고령화로 최근 몇 년간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반면, 손보사들은 꾸준히 실적 개선 흐름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MG손보는 현재 경영권을 예보가 갖고 있어 시급히 매각을 해야 하는 데다, 다른 매물에 비해 규모가 작아 우리금융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보험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보험사 인수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이유를 두고 지나치게 높은 몸값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새로운 회계 제도가 도입돼 여러 보험사의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늘면서, 매물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인수 이후 투입되는 추가 비용 규모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점도 임 회장이 보험사 인수에 대해 한 발을 뺀 이유로 꼽힌다. 최근 보험사들은 보험대리점(GA)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전문 GA사를 인수하는 등 영업망을 넓히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금융이 보험사를 인수해도 실제로 기대한 만큼 실적을 거두려면 GA사 추가 인수를 통해 설계사 수를 늘리거나, 마케팅·광고 등에 거액을 지출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증권사의 경우 개인 고객들의 금융 상품 거래는 대부분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이뤄져 보험사만큼 추가 비용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또 투자은행(IB) 부문이나 법인영업 등은 시장 상황이 개선될 경우 바로 수익을 낼 수 있고, 우리은행 조직과의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M&A 시장에서 ‘큰손’으로 꼽혔던 우리금융이 빠질 경우 인수전 흥행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며 “손보사 인수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도 최근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 매물 보험사 소유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