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자 보호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국회 입법조사처가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는 방안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발간해 관련 법 개정 작업에 불똥이 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예보)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을 위한 연구용역 결과를 오는 10월 국회에 보고한다. 금융권은 현행 5000만원인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까지 상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1일 금융권과 국회에 따르면 입법조사처는 ‘2023년 국정감사 이슈 보고서’를 통해 “예금자보험한도 상향으로 편익은 금융자산이 많은 일부 상위계층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추가 혜택을 받는 예금자는 금융권별로 약 1~2% 내외에 불과하다. 한도 상향 효과가 미미하고 혜택을 받는 예금자도 주로 고액자산가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이후 23년째 5000만원에 머물고 있다. 미국(25만달러·약 3억원)과 유럽연합(10만유로·약 1억4000만원), 일본(1000만엔·약 9000만원)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금융위와 예보는 연구용역을 통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보고서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올릴 경우 금융사들이 건전성 관리보다 높은 금리의 예·적금 상품 취급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금융 소비자들도 시중은행보다 재무구조가 취약하지만 높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을 선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금융위와 예보가 국회에 제출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금보험료 인상으로 금융소비자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예금자보호법상 책정된 예보료율은 예금액 대비 은행 0.08%, 저축은행 0.40%다. 예금보호한도가 오를 경우 예보료율 역시 인상될 가능성이 큰데, 그만큼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자가 줄어든다.

보고서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는 대신 ‘중대한 금융경제 위기’ 등의 경우에 한해 예금자보호한도를 초과해 예금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때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등은 예금자 보호 한도와 상관없이 예금 전액을 지급하기로 했다. SVB 사례를 참고해 관련 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입법조사처의 이번 보고서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위한 법 개정 작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입법 지원기관인 입법조사처가 반대 의견을 낼 경우 법 개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예금자보호한도 상향과 관련된 법안은 총 12건이 계류돼 있다. 야당이 9건, 여당이 3건을 각각 발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입법조사처가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시 고액 자산가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 핵심이다”라며 “여야 모두 민감한 부분이라 법 개정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