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소비자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을 한곳에서 따져볼 수 있게 하려면, 각종 상품 정보를 진열대에 모두 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표준 API’를 도입한다는 건 일부 공통된 정보만 올려야 한다는 얘기에요. 일부 상품 고유의 차별점이나 특성은 표출하지 못하고요. 이게 소비자를 위한 혁신입니까?”
복수의 핀테크 회사 관계자

금융위원회가 내년 1월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인 온라인 보험 비교 추천 플랫폼 서비스에 ‘표준API(통합API) 도입’ 카드를 꺼내면서, 혁신금융서비스에 참여하는 핀테크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20일 ‘플랫폼의 보험상품 취급 시범 운영 방안’에 관한 논의를 위해 핀테크 회사와 보험회사 관계자들을 소집해 회의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8월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적용해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르면 올해 연말 플랫폼 출시를 목표로 업계와 각종 논의를 해왔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금융위 측은 보험사를 대변하는 손해보험협회와 핀테크업계를 대변하는 핀테크산업협회 양측이 ‘표준 API 도입 방안’에 관해 협의해 다음 달 15일까지 대안을 제시하라고 통보했다.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란 금융사(데이터 제공자)와 플랫폼의 프로그램이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는 방법과 그 규격을 뜻하는데, 그 방식과 유형 등에 따라 ‘표준(통합)’, ‘공통’, ‘개별’ API로 구분된다. 표준API가 정보 통신 규격을 하나로 통일화한 것이라면, 개별 API방식은 회사별로 다른 정보 전송 방식을 쓰는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에 참여한 핀테크업계는 금융 당국이 ‘표준API 도입’ 논의 안건을 띄워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금융사와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사의 프로그램이 주고받게 되는 데이터 항목의 종류, 정보 개수, 상세 규격 등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표준API 방식을 도입하면, 결국 핀테크사들은 각 사의 플랫폼을 차별화하지 못하게 되고, 서비스 혁신성도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금융위로부터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규제 특례를 부여받은 회사는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뱅크샐러드 ▲비바리퍼블리카 ▲SK플래닛 ▲NHN 페이코 ▲쿠콘 ▲핀다 ▲핀크 ▲해빗팩토리 ▲헥토데이터 등 11곳이다.

A핀테크사 관계자는 “지난주 금융위 회의 이후 참여사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라며 “표준API 도입은 금융소비자를 위해 법적 규제를 풀어 보험 시장의 혁신을 꾀하려는 규제샌드박스 본 취지와 거리가 멀어지는 방안이다”라고 주장했다.

표준API를 도입하면 핀테크사들의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프로그램은 여러 보험사의 보험 상품의 일부 공통 사항만 가져올 수 있게 되고, 일부 상품의 고유한 담보 등 특성은 담지 못한다는 게 핀테크업계의 설명이다. 가령, 11개 보험사의 보험 상품을 비교 추천할 때 11개 보험사 상품의 공통 정보만 받을 수 있고, 1~2개사만이 갖고 있는 특약 등 차별화된 정보는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프로그램이 읽지 못하게 돼, 비교·추천 플랫폼상에 올리지 못하는 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 환경에서는 플랫폼이 보험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상품 서비스 차별화 경쟁을 할 필요성도 줄게 된다는 게 핀테크업계의 논리다.

B핀테크사 관계자는 “복잡하고 다양한 보험상품 특성을 개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얼마나 더 명확하게, 차별화해 잘 보여줄 수 있느냐가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사업의 성패를 가를 혁신의 핵심인데, 표준API로 하게 되면 11개사가 각 플랫폼을 차별화하지 못하고, 보험사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지 못하면서 이미 보험협회가 운영 중인 ‘보험다모아’처럼 유명무실한 서비스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험 비교 추천 서비스 플랫폼. /금융위원회

은행업권의 신용대출 비교 추천 플랫폼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 목소리도 있다. C핀테크사 관계자는 “이미 은행업권이 참여해 시행 중인 신용대출 상품 비교 추천 플랫폼 서비스도 개별API로 운영되고 있다”라면서 “금융위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할 문제를 직접 업계를 불러 모아 표준API를 논의 안건으로 올린 것은 결국 플랫폼 서비스가 무력화되길 원하는 일부 대형 보험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요 대형 보험사들은 표준API(통합API)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를 필두로 한 손해보험사와 손해보험협회가 표준API 도입을 추진해 왔고, 최근 금융 당국에 의견을 냈다는 게 보험업계의 전언이다.

앞서 대형 보험사들은 보험상품 특성상 통일된 기준으로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게 어렵고, 플랫폼 사용에 따른 수수료 문제와 설계사 등 모집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등의 이유로 보험 비교 추천 서비스에 반대해 왔다. 금융위원회는 취급 상품 영역을 여행자보험, 화재보험,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저축성보험, 펫보험, 신용보험 등 온라인 단기 보험으로 축소했다. 또 플랫폼이 보험회사로부터 수취하는 수수료가 보험료에 전가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수료 한도를 설정했다.

금융위원회는 표준API 도입 여부 등을 정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API 방식은 보험업계와 핀테크업계 양측이 협의해 결정할 문제다”라면서 “금융위가 특정 API 방식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한 관계자는 “여러 플랫폼의 상이한 알고리즘과 가공된 정보 관리 등에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고려하면 당국 입장에서는 하나로 통일화한 표준API가 관리 측면에서 낫겠다고 보는 반면에 핀테크 기업 입장에선 표준API 도입 시 애당초 구상했던 제휴사 확대, 제휴 서비스 출시 등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사업 확장 전략을 추진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