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리플이 증권성 코인이 아니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줄곧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대형 가상자산 대신 오랜 기간 가격이 오르지 못했던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의 통칭)으로 눈을 돌리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4일 오후 3시 30분 현재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원화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보다 0.9% 내린 3859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달 들어 최고가였던 4150만원 대비 약 7% 하락한 수치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 달러화 기준 가격도 이달 초 3만1000달러선을 돌파했지만, 이날 현재는 전날보다 0.4% 하락한 2만9784달러를 기록 중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지방법원이 리플은 증권성 코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부터 내림세다. 법원은 리플이 증권성 코인에 해당한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발행사 리플랩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리플랩스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리플을 판매한 것은 연방 증권법을 위반한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리플의 승소가 비트코인에도 호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리플을 포함한 여러 알트코인이 증권성 논란을 벗어날 경우 가상자산 전체에 대한 투자심리가 살아나 대장주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도 다시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판결 이후 열흘이 지나는 동안 리플은 가격이 급등한 후 계속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증권성 논란을 벗어난 리플과 일부 알트코인으로 투자가 몰리면서,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일부 대형 가상자산들은 외면을 받은 것이다.
업비트에서 원화 기준 리플 가격은 6월 이후 줄곧 600원대에서 움직였지만, 승소 판결이 나온 13일 1000원대로 급등한 후 현재 942원에 거래되고 있다.
SEC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비트코인 가격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지난 17일 참석한 행사에서 “법원의 판결에 실망했다”며 “우리는 이번 판결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거래소에서 판매되는 리플은 증권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추진 중인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도 승인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은 비트코인 현물을 활용한 ETF의 상장 신청서를 지난달 제출했지만, SEC는 상품에 대한 정보와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현물 ETF가 출시될 경우 비트코인에는 큰 호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웠던 운용사, 투자은행(IB) 등 기관들이 참여해 시장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기관의 참여가 늘수록 ETF에 활용되는 비트코인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겐슬러 위원장이 리플 판결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SEC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강한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비트코인 현물 ETF 역시 짧은 시일 안에 승인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영국의 디지털자산운용사인 코인셰어즈의 크리스 벤딕슨 애널리스트는 “SEC가 급진적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받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