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50년까지 연장하는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번 만기 연장을 두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줄어든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만, 이자액 부담이 커지고 부동산 침체 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지난 5일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채움고정금리모기지론(혼합형)의 대출 한도를 4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최초다. 최초 5년간은 고정금리를 적용하고 이후 월중 신규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6개월 기준금리를 활용한 변동금리를 적용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7일 하나아파트론, 하나혼합금리모기지론, 하나변동금리모기지론, 하나혼합금리모기지론(변동금리대환전용) 등 주택담보대출 상품 만기를 4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14일 KB주택담보대출, KB월상환액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등 상품의 최장 만기를 40년에서 50년까지 확대해 시행하기로 했다.
앞서 올해 초 Sh수협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주택담보대출 최장 만기를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DGB대구은행이 지난달 30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상품 만기를 50년으로 늘렸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을 검토 중이다. 만기 50년 주택담보대출은 조만간 전 은행권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최장 만기는 40년이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5월 대출 상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청년층과 신혼부부를 한정으로 50년 만기 정책모기지를 내놓았다. 당시 50년 만기에 대해 은행권은 수요가 클 것이라고 보지 않았지만 주택금융공사의 상품 중 50년 만기 상품이 기대보다 수요가 있자 은행권에서도 50년 상품 출시에 동참하기로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대출총량규제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대출 만기 확대 등에 대한 기회가 커졌다”며 “주담대 50년 만기상품에 대한 시장 수요가 있는 만큼 최근 은행권에서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만기가 늘어나면 대출 한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주담대는 DSR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적용돼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매년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원금을 갚는 기간이 50년으로 늘어나면 매년 갚아야 하는 원금이 줄어들어 그만큼 대출 한도가 늘어난다.
예컨대 연 소득이 5000만원인 차주가 40년 만기(연 4.4%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할 경우 DSR이 적용돼 최대 3억75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DSR은 연소득에서 연간 원리금 총액이 차지하는 비율로, 은행권의 경우 4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출 기간을 50년으로 늘리면 매월 갚는 원리금이 줄어들면서 대출 한도가 4억300만원으로 3000만원 더 늘어난다.
원리금 상환 부담도 줄어든다. 금리 연 4.4%로 5억원을 대출받으면 40년 만기일 경우 월 이자 부담액은 약 222만원이지만, 50년 만기 때 월 이자 부담액은 약 206만원으로 약 16만원 낮아진다. 이 때문에 금리 상승기 차주들의 상환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상환 기간이 길어진 만큼 전체 이자액 부담은 커진다. 40년 만기(연 4.4%)로 5억원을 빌릴 때는 총대출이자는 약 5억6357만원인데, 50년 만기로 빌리면 총대출이자는 약 7억3769만원으로 원금의 150% 수준까지 늘어난다. 이자가 원금보다 훨씬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 인구감소, 자산 가격 조정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해 집값이 하락하면 대출을 중도에 상환하지도 못하고 빚에 묶여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만기가 늘어난 만큼 대출을 길게 가져가기 때문에 이자 부담과 위험이 만기가 짧을 때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할 경우 은퇴 후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집값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중장기 집값 전망에 따라 만기 연장이 기회 혹은 위기가 될 수도 있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이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를 더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집값 하락에 따른 리스크도 더 클 수 있다”면서도 “다만 부동산 가격 하락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부동산 가격이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