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3)씨의 입원 일수 및 패턴을 분석한 결과, 특정 기간에 보험 가입이 집중됐고, 목격자 없는 단독 사고가 빈번합니다. 비교적 입원이 쉬운 병원을 찾아 반복적으로 과다 입원을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보험 사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A생명보험사 보험사기 특별조사팀(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인공지능(AI) 조사관이 보낸 경고 알림이었다. AI 기반의 보험사기인지시스템이 혐의스코어 기능을 활용해 K씨를 ‘보험사기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알려온 것이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K씨는 2012년 5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여러 보험사를 돌며 보장성보험에 집중적으로 가입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2012년 7월부터 입원이 쉬운 동네 병원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보험금 ‘수금’에 나섰다.
K씨는 2012년부터 약 8년간 874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특히 2018~2020년 3년간은 연평균 150일 이상 입원해 보험금을 타냈다. 1년의 절반가량을 누워있으면서 돈을 번 셈이다. K씨는 총 49회에 걸쳐 단순 사고와 질병을 이유로 보험금을 청구했고, 이렇게 허위로 타낸 보험금만 모두 4억원을 웃돌았다.
K씨는 단순 염좌, 추간판(디스크)질환, 협심증 등 다양한 이유를 돌려가며 교묘히 보험 사기 의심을 피했다. 2012년 7~9월엔 뒤로 넘어지는 사고로 70일, 2013년 5~6월엔 가슴 부위 타박상으로 30일을 입원했다.
연이은 사기 행각의 성공으로 K씨의 거짓말은 점차 대담해졌다. 입원이 쉬운 병원을 찾는 노하우도 생겼다. 그는 2014년 5~7월엔 교통사고로 50일, 2017년 9~12월엔 낙상으로 80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외에도 교통사고로 65일간 입원하기도 했다.
한 보험사의 여러 상품에 가입한 게 아닌, 12개 보험사로부터 1~2건씩 총 13건의 보장성보험에 가입한 뒤 매번 다른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받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 보험사에서 집중적으로 보험금을 타내지 않고 여러 보험사의 보험금을 번갈아 타내 보험금 지급 간격을 넓힌 것이다.
무엇보다 K씨는 고액의 입원비에 집중했다. 입원 1일당 질병 입원비 27만원, 성인병 입원비 38만원, 재해 입원비 29만원 등을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2012년부터 10년 가까이 보험금은 K씨에게 쏠쏠한 용돈벌이가 됐다. A보험사에서만 약 6000만원을 타냈고, 총 지급된 보험금은 보험업계 합산 4억1345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K씨의 행각은 A보험사의 AI 보험사기 인지 시스템에 덜미를 잡혔다. 개별 청구 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 가입 당시부터 전체 청구 건에 대해 기존 보험 사기와의 유사 패턴을 찾아내는 AI의 분석망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경찰은 지난해 4월 K씨를 보험사기로 적발했다. K씨는 여러 건의 보험사 집중가입 및 보험범죄 혐의가 인정돼 검찰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그동안은 보험사기가 의심될 경우, 주로 보험사기 조사자의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AI 조사관은 최신 머신러닝(기계학습) 기법과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를 통해 보험 계약, 사고 정보 등 데이터를 보험사기 의심 사례 발생이 빈번한 질병·상해군으로 자동 분류한다. 또 보험금 청구건 중 보험사기 의심 건을 조기에 발견해 알려준다.
보험 사기 분석과 적발은 ▲인지 ▲조사 ▲분석 순서로 진행된다. A보험사는 사기 행각이 적발되기 직전인 2018년부터 3년간 K씨가 연평균 150일 이상 입원한 점을 의심했다. 연평균 100일 이상 입원하는 것은 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해 과다 장기 입원하는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질병분류별 통계에 따르면, 해당 연령(50세~54세)의 연평균 입원 일수는 협심증 13.8일, 경요추 염좌 및 긴장 8.2일, 추간판질환 7.3일 등에 불과하다. K씨가 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해 일부러 오래 병실에 누워있었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AI 조사관은 K씨가 다닌 병원의 입원 패턴까지 분석해 정확도를 높였다. 그 결과, 객관성 없는 단독사고를 유발하고 입원이 쉬운 병원을 찾아 반복적으로 과다입원을 한 것으로 판단됐다. 이를 바탕으로 A보험사는 추가적인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았고, K씨는 경찰에 넘겨졌다.
A보험사 관계자는 “AI 기반의 보험사기인지시스템은 SIU 소속 직원이 기획부터 개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유지보수까지 맡아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AI 조사관은 이번 사례와 유사한 유형을 학습해 같은 방식의 보험사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험사기의 사전 예방에 기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