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지인

가상자산 리플이 증권성 코인이 아니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 등 대형 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들의 가격 상승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거래소 등도 규제 부담을 덜게 되면서 코인 관련 투자와 신사업도 한층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 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뉴욕지방법원은 리플은 증권성 코인에 해당한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발행사 리플랩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리플랩스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리플을 판매한 것은 연방 증권법을 위반한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아날리사 토레스 판사는 “일반 투자자들이 거래소에서 리플을 사고 판 것은 미래 투자 수익에 대한 합리적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증권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거래한 리플은 증권성 코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이다.

판결 직후 리플 가격은 한 때 90% 넘게 급등하며 93센트까지 치솟았고, 한국 시각으로 14일 오후 3시 30분 현재 79센트를 기록 중이다. 리플은 이달 들어 13일까지 50센트를 밑돈 가격에 거래돼 왔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주가도 전날보다 24.5% 상승한 107달러를 기록했다.

◇ 알트코인, 상폐 위기 벗어… 비트코인 현물 ETF에도 호재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현재 증권성 논란을 겪고 있는 상당수 알트코인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들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대형 코인들의 가격이 눈에 띄게 회복됐지만, 알트코인 가격은 계속 약세를 보였다. SEC가 리플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의 알트코인에 대해서도 증권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폐 우려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SEC는 지난달 솔라나와 폴리곤, 에이다 등 19종의 알트코인에 대해서도 증권성이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업체인 엠버데이터의 크리스 마틴 리서치 책임자는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른 여러 알트코인 역시 앞으로 증권형 토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토큰이 대량으로 상폐될 것이라는 우려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 가상자산 시장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SEC의 규제를 받았던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 등 대형 거래소들이 다시 투자와 신사업 추진을 재개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SEC는 지난달 세계 1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이어 코인베이스에 대해서도 증권성 코인을 상장해 중개한 것은 연방 증권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리플이 증권성 논란을 벗어나면서 바이낸스, 코인베이스를 상대로 한 SEC의 소송에서도 법원이 거래소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한층 커지게 됐다. 특히 이번 판결에 따라 미국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가상자산 규제 완화 입법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암호화폐 리플(XRP)을 발행하는 리플랩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면서 리플이 폭등한 14일 서울 강남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나오고 있다. /뉴스1

현재 블랙록, 피델리티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추진 중인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을 받을 길이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 연구원은 “비트코인 현물 ETF가 허용되려면 코인베이스와 맺은 시장 감시 공유 계약을 SEC가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코인베이스를 상대로 한 SEC의 제소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번 판결로 지적 사항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성사될 경우 그동안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웠던 기관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장주’인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 증가와 함께 전체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규모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美 법원 “기관투자자 대상 리플 판매는 증권법 적용”… 논란 불씨

다만, 가상자산 시장에서 알트코인에 대해 낙관론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뉴욕지방법원은 거래소에서 일반 투자자에 판매된 리플은 증권이 아니라고 봤지만, 리플랩스가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판매한 데 대해서는 증권법 적용 대상이라고 봤다. 코인에 대한 수요가 커지기 위해서는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가세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로 인해 투자자들의 기대만큼 알트코인 가격이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EC의 항소 여부도 변수다. 외신에 따르면 SEC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리플 판매 행위가 증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에 환영했지만, 일반투자자 관련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SEC가 항소해 다음 판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릴 경우 모처럼 활력을 찾은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