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고 있는 주거래 시중은행에서 통장과 카드를 만들어 주려고 해도 아이가 싫다고 해요. 친구들은 다 카카오뱅크, 토스꺼 쓴다고요. ‘엄카(엄마 카드)’ 말고 본인 명의 카드 쓸 거라고 난리예요.”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용돈을 지급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그동안 현금으로 용돈을 줬으나, 최근 ‘현금 없는 버스’ ‘키오스크’ 등이 늘며 아이들이 카드를 달라고 요청하는 빈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래은행에서 아이 명의의 계좌를 만들려면 영업점을 방문해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고, 본인 명의의 카드는 분실 우려 등이 있어 고민하던 중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선불전자지급수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인터넷은행이 10대부터 20대 초반 연령대인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를 사실상 선점했다는 평가가 금융권에서 나온다. 카카오뱅크의 선불카드인 ‘미니’의 가입자 수는 지난 5월 말 기준 174만명이며, 토스의 선불카드인 ‘유스(USS)카드’는 6월 말 기준 116만장이 발급됐다. 이는 전체 만 14~18세 인구의 약 76%, 50% 수준이다. 시중은행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미래의 잠재적 고객을 뺏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서둘러 타깃층을 확대하고 관련 플랫폼을 개편하는 등의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하반기 10대 전용 금융 플랫폼 ‘리브넥스트’의 타깃층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타깃 연령층을 낮추고 부모를 공략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모로 논의 중이다”라며 “플랫폼 등도 점검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리브넥스트는 10대도 본인 명의 휴대전화 인증을 통해 선불카드인 ‘리브포켓’을 개설하고 수수료 없이 송금과 결제를 할 수 있다. 카카오뱅크 미니, 토스 유스카드와 같은 구조다.
카카오뱅크도 미니 가입 대상 연령을 확대했다. 오는 8월부터 가입 대상이 만 14∼18세에서 만 7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된다. 토스 유스카드는 이미 만 7세부터 가입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10대는 완전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다”라며 “시중은행인지, 인터넷은행인지, 자산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용이 간편하고 심미적으로 우수하냐가 소비의 기준이 된다”며 “처음 금융 거래를 시작한 은행을 10년, 20년 뒤에도 사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타깃 연령층을 낮추고 니즈를 파악해 이들을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신한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10대 전용 ‘신한 밈(meme)’ 카드, 20대 전용 ‘헤이영 캠퍼스’ 플랫폼 등을 구축해 운영 중인 가운데 하반기 신규 고객 유치에 힘을 싣는다는 계획이다. 또 미성년자를 자녀로 둔 부모에 대한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태아 때부터 고객 관리가 가능한 ‘리틀 신한 케어’를 출시했다. 태아의 출생 예정일을 등록하면 출생일 전후에 알림톡을 보내 자녀 신규 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미리 작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미성년자 계좌를 비대면으로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전날 은행 방문 없이 비대면으로 미성년 자녀의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자녀 계좌를 개설할 때 영업점을 방문해 가족 관계를 입증하는 서류들을 제출해야 했다. 하나은행도 지난 9일부터 미성년자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작했다. 은행 관계자는 “자녀의 금융거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이 어떤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파악해 편의성과 실용성을 갖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