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금융 당국이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의 하나로 4번째 인터넷전문은행 등장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핀테크(FinTech·기술과 금융의 합성어)업계에서는 ‘인뱅’보다 관심이 많았던 ‘챌린저뱅크(소규모 특화 은행)’ 출범이 사실상 무산된 게 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챌린저뱅크 설립 지원 방안이 구체화되길 고대하던 핀테크업계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최근 금융위가 5개월여간 준비해 발표한 은행권 제도 개선방안에 챌린저뱅크 도입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에 집중된 시장을 깨는 대안으로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되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에 특화한 챌린저뱅크 도입이 유력하게 논의됐었다.

챌린저뱅크 도입이 계속 검토과제로 미뤄진 배경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있다. SVB는 금융 당국이 스몰라이선스와 챌린저뱅크 도입을 위해 벤치마킹한 주요 해외사례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 사태로 금융권 안팎에선 챌린저뱅크가 우후죽순 생길 경우 신용 리스크가 커지는 등 부실화 문제가 제기됐다. 결국 과점체제 타파 방안의 하나였던 챌린저뱅크는 최종 개선안에서 빠지게 됐다.

네이버파이낸셜 제공

대신 이번 방안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인가 정책을 대폭 완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유력 후보로는 과거 제3인터넷은행에 도전했던 키움증권과 더불어 핀테크 업체 네이버파이낸셜이 꼽힌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제휴를 통해 네이버 통장 등 유사 수신 기능을 갖췄고,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대상 대출 중계 등 금융업에 발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인터넷은행이 되고 싶은 수요는 미미하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현행 법령상 인터넷은행의 자본금 요건은 250억원으로, 시중은행(1000억원)보다 문턱이 낮지만, 물적·인적 설비까지 갖추려면 최소 3000억원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충청권 은행도 인터넷전문은행 방식으로 설립을 추진하려 했으나, 자본금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네이버가 그나마 자본력과 고객 확보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그동안 간접적인 제휴 방식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온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직접 은행업에 진출할 의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이미 있는 인터넷은행도 메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받고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시노트 장부 화면 캡처. /한국신용평가 제공

업계는 대신 챌린저뱅크 도입안이 흐지부지된 점에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개인사업자 정산 서비스인 캐시노트를 운영하는 한국신용데이터는 최근 소상공인 특화 은행 설립을 공식화했다. 130만개 사업장에 도입된 경영관리 서비스 캐시노트 관련 데이터를 중심으로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들이 적시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인가 신청 시기와 방식은 금융 당국의 정책 방향 등을 고려해 추후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 3사가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는데도 은행권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대에 불과한데, 이보다 더 작은 핀테크 업체가 진출해봤자 이 안에서 경쟁하는 것밖에 되지 않겠나”라면서 “그나마 한 요인에 집중해 업체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챌린저은행을 기대했는데, 당국이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해 김이 빠지는 모양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