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권 경영ㆍ영업 관행ㆍ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금융당국의 은행권 경쟁 촉진 대책이 베일을 벗었으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은행권의 경쟁 촉진 대책으로 논의되던 특화전문은행 신규 인가,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 허용 등이 사실상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전면에 내세운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제외하고는 굵직한 은행권의 경쟁 활성화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에서는 대구은행이 전국구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마저 5대 시중은행의 과점을 깰 수 있는 효과적인 패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5일 은행권 경쟁 촉진 및 구조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신규 플레이어 진입 촉진 ▲여타 플레이어를 통한 시중은행과의 경쟁 촉진 ▲금융권 간·금융-정보통신기술(IT) 간 협업 강화 ▲기존 금융회사간 대출‧예금 금리경쟁 촉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금융위가 은행권 경쟁 활성화를 위해 전면에 내세운 대책은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다. 대구·경북 지역에 기반을 둔 대구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겠다는 전략이다. 시중은행이 늘어나면 금융 소비자 확보를 위한 경쟁이 활성화돼 예금금리 인상, 대출금리 인하 등의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다.

일각에서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이 과연 경쟁을 촉진할 ‘메기’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대구은행이 영업권역을 넓히면서 공격적 영업을 해 당장은 은행의 경쟁이 촉진될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5대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가 6대 시중은행 체제로 변해 다시 큰 경쟁이 없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은행 본점.

대구은행의 체급이 5대 시중은행에 비해 낮아 경쟁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원화대출금은 289조원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원화대출금이 327조원으로 앞서 나간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원화대출금 규모가 279조원에 달한다. 반면 대구은행의 원화대출금 규모는 51조원이다. 외국계은행인 SC제일은행(45조원)을 앞서가는 수준이지만, 시중은행 대비로는 6분의 1에 그치는 규모다.

금융권 관계자는 “초기에는 대구은행이 공격적인 영업을 할 수 있어 경쟁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시중은행과 덩치 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 유효한 경쟁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또한,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뒤 영업권역을 확대하더라도 강원·충청 지역을 제외하고는 추가로 진출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경쟁이 제한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로 꼽힌다. 현재 대구은행 영업권역은 서울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경기·경남·경북이다. 수도권은 시중은행이 상당 장악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은 지방은행이 영업권을 선점하고 있다.

특화전문은행에 대한 결론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은행권 경쟁 촉진 대책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는 대목이다. 금융위는 “특화전문은행을 지속 확산하겠다”라고 밝혔지만, 특정분야에 전문화된 신규인가 신청 시 현행 제도의 틀 내에서 신청하는 영업 특성에 따라 인적‧물적 요건 등을 탄력적으로 심사하겠다”라고 했다. 당초 금융당국이 인가 요건 완화 등을 통해 특화전문은행의 등장을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리스크를 고려해 규제 완화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증권사 등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해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논의도 결국 제자리였다. 계좌개설 권한은 현재 은행에만 허용돼 있지만, 지급결제 업무를 비은행권까지 확대하면 증권·보험·카드·핀테크사 등은 자체 금융플랫폼을 통해 입출금, 급여이체, 간편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은 ’동일 기능-동일 리스크-동일 규제’ 원칙 하에 지급결제 안전성 및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담보제도, 유동성·건전성 관리 등에 대해 추가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허용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국은행은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에 대한 반대를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전 세계에서 엄격한 결제리스크 관리가 담보되지 않은 채 비은행권에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를 전면 허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라며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시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 발생 위험 증대 등에 따라 큰 폭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라고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을 반대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급결제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지만, 오래 걸리는 이유는 안정성과 편익 측면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특히 지급결제의 경우 시스템 안정성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 신중하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