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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이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을 키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 시장 환경이 온라인·모바일 기반으로 바뀌고 있는 데다 보험사 실적과 직결된 설계사와 금융소비자를 확보하는 데 디지털 플랫폼이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보험사들이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모바일 경쟁력 제고’를 역점 과제로 삼고 있다. 보험사들은 디지털 사업 부문 조직을 신설·확대하고, 모바일 플랫폼 개발 사업에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한화생명의 판매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지난해 10월 출시한 디지털 플랫폼 ‘오렌지트리’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보험판매대리점(GA) 소속 설계사의 통합 영업 지원 플랫폼이다. 그동안 여러 생명보험·손해보험사의 보험 상품을 전반적으로 취급하는 GA 활동 설계사들은 각 보험사의 시스템에 개별 접속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있었는데, 오렌지트리 플랫폼은 설계사가 한 번만 로그인하면 여러 제휴 보험사의 영업지원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고객 정보 입력도 한화생명금융서비스와 제휴사 시스템에 연동돼 자동 반영된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2022년 10월 출시한 통합 영업지원 디지털 플랫폼 오렌지트리. /한화생명

플랫폼의 양적 성장을 위해선 제휴사 확보와 설계사의 꾸준한 유입이 관건이다. 오렌지트리와 제휴를 맺은 GA는 최근 9곳으로 늘었다. 제휴 보험사(원수사)는 한화생명, 한화손보,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KB손보 등 6곳이다. 회사 측은 “GA업계 상위 20위권 중 9개사와 제휴해 약 6만여명 GA설계사가 오렌지트리를 사용하게 됐다”면서 “오렌지트리를 사용하는 GA사의 요구 사항을 수렴해 올해 하반기부터 시스템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제휴 보험사를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미래에셋생명금융서비스가 설계사 영업 지원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했고, 메트라이프생명도 인공지능(AI) 기반 설계사 교육 통합 플랫폼 ‘팁(TIP·Training Integration Platform)’을 출시했다. 모두 설계사들의 교육과 함께 고객 상담부터 보험 상품 추천, 계약 체결까지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보험상품을 영업·판매하는 설계사뿐 아니라 기존 계약자와 잠재 고객 등 금융 소비자도 보험사 플랫폼의 대상이다. 교보생명은 이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은행·증권 등 고객 계좌 간 간편 송금 이체가 가능하도록 오픈뱅킹 서비스를 확대했다. 오픈뱅킹과 금융마이데이터를 연계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특히 그룹 차원의 데이터 협업을 통해 고객 중심 데이터 체계를 마련하고,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고도화된 개인화 서비스 제공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삼성화재는 모바일 플랫폼에 헬스케어, 반려동물 등 비금융 영역과의 연계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4월 삼성화재 다이렉트 앱에 선보인 ‘착!한생활시리즈’는 앱에서 안전운전·걷기 등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면 포인트를 주는 서비스로, 출시 1년여 만에 가입자 수가 8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메타버스 기반 반려동물(펫) 커뮤니티 서비스 ‘O모O모(오모오모)’ 를 출시했는데, 출시 6개월 만에 가입자 수 10만명을 넘어섰다. 여기엔 플랫폼을 활성화하고, 보험판매채널 이상의 생활플랫폼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앞서 올해 초 KB라이프는 디지털·데이터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DT본부를 신설했다. 신한라이프는 디지털전환(DX)그룹을 , KB손해보험은 고객·상품·채널(CPC) 운영체계 실행력 강화를 위해 CPC디지털부문을 각각 신설했고, 교보생명은 작년 말 그룹데이터전략팀을 새로 만들었다. 조직명을 각각 다르지만 각 사의 디지털 사업을 주도하는 핵심 기지다. 금융 소비자들의 온라인 플랫폼 유입을 늘리고 앱 이용을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게 보험사 관계자들의 얘기다.

보험사들이 디지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인데, 여기엔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거대 플랫폼 회사 및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은행·페이·보험·증권 등 금융시장 진출이 자극제가 됐다. 플랫폼 경쟁에 밀려 금융 시장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린 것이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과 카카오 VX는 카카오골프예약 플랫폼에서 지난 5월 15일부터 진행한 ‘무료 홀인원 보험 이벤트’ 프로모션 이미지. ‘카카오 골프 예약’ 플랫폼에서 티타임을 예약하면 홀인원 보험 가입 이벤트 페이지가 뜨고, 이곳에서 ‘무료로 보장받기’를 선택하면 간단한 동의를 거쳐 카카오 VX가 부담하는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의 홀인원 보험에 무료로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

플랫폼 강자이자 보험업 후발주자인 카카오의 계열사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의 디지털 전략도 보험사들의 견제를 받고 있다.이 회사는 지난 5월 카카오 VX와 함께 카카오골프예약 플랫폼에서 ‘무료 홀인원 보험 이벤트’를 진행했고, 한 달 만에 4만명이 카카오페이손보의 홀인원보험에 가입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카카오 계열사 간 시너지와 플랫폼 마케팅 경쟁력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와 함께 출범 당시 기대와 달리 고전하고 있었던 카카오페이손보의 본격적인 마케팅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보험업계를 비롯한 금융사들의 디지털 플랫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금융업과 비금융업 간 경계가 모호한 빅블러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고,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세대가 핵심 소비자 그룹으로 부상하면서 금융권의 플랫폼 기반 비즈니스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디지털 환경에 맞지 않는 규제를 개선하고, 국제 기준에 맞도록 빅테크・금융보안규제를 정비해 금융과 비금융 융・복합 신상품·서비스 출현을 유도하는 게 올해 주요 업무 과제”라면서 “혁신펀드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등 금융분야 신산업 육성 사업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