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시장이 얼어붙으며 경영 위기 심화를 겪고 있는 코인마켓거래소들이 시중은행을 통한 실명계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코인마켓거래소들은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원화 거래 사업 준비에 나섰으나 마땅한 제휴 은행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올해 가상자산시장 침체기가 이어지며 여러 코인마켓거래소는 고사 직전에 처해 궁여지책으로 시중은행들에 실사 요청을 하고 있지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실제 제휴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19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프로비트, 지닥, 후오비, 플라이빗 등 코인마켓거래소들은 시중은행의 실명 계좌를 받기 위해 실사를 요청하는 등의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실사를 요청한 곳은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전북은행,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현재 업비트, 빗썸과 같은 원화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 중인 곳이다.
코인마켓거래소는 비트코인 등 대형 코인을 충전해 다른 코인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소를 뜻한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원화로 가상자산 매매가 가능한 원화거래소와 다르다. 코인마켓거래소는 코인의 가격이 오르는 상승장에는 충전한 코인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지금과 같은 하락장에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 원화와 다르게 코인은 가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코인 투자자들은 안정성을 위해 원화거래소를 선호한다. 현재 금융 당국에 등록된 코인마켓거래소는 플라이빗, 코어닥스, 지닥, 포블게이트 등 22곳이다. 이들이 전체 가상자산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1~2%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지난해 '루나·테라' 폭락, FTX 파산 등 대형 악재가 터지자 코인마켓거래소들은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2022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코인마켓거래소의 일일 거래 대금은 200억원 정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5대 원화거래소의 경우, 약 2조9400억원으로 집계됐다. 등록 고객 수를 놓고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원화거래소의 경우, 지난해 말 1132만개의 계정이 등록됐으나, 코인마켓거래소의 등록 계정 수는 45만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코인마켓거래소들은 영업손실로 162억원을 기록했는데, 상황은 점차 악화하며 4분기에는 영업손실이 253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 역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비슷한 적자 폭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점차 커지는 경영 위기에 코인마켓거래소들은 신규 고객 유치가 쉬운 원화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실명계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원화마켓거래소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제15조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에 따르면 금융소비자 및 고객에 대해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거래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뒀기 때문이다. 코인마켓거래소들은 자금 세탁 방지 등 실명계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며, 금융 당국에 사업의 기회를 열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코인마켓거래소가 실명계좌를 받을 수 있는지에는 불투명하다. 코인마켓거래소를 포함한 여러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올해 '러그풀(rug pull·갑작스럽게 자산 및 투자금 등을 빼돌리는 금융 사기)'과 같은 여러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코인마켓거래소 중 한 곳인 지닥은 올해 보유 자산 중 30%인 190억원 정도가 해킹으로 탈취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피해는 복구된 상태지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금융 당국의 인식 또한 악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 3~4월 지닥과 포블게이트 등 코인 거래소를 향해 현장 실사에 나선 결과에 따라 실명계좌 발급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FIU 측에서 코인마켓거래소에 대해 자전거래와 같은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해 과태료 처분 등을 내리게 된다면 실명계좌 확보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위 내부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만일 금융위로부터 과태료와 같은 처분을 받게 되면 코인마켓거래소로서는 치명타를 입는 셈이다"라며 "금융위가 제재한 거래소와 제휴하고 싶은 은행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가상자산 시장이 해킹, 파산과 같은 논란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점도 코인마켓거래소를 괴롭히는 요소 중 하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