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1000만원으로 시작한 코인이 5억원으로 불었을 때 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1000만원은 부모님과 대부업체에 빌린 돈이었어요. 지난해 코인 가격이 폭락하면서 가족과 지인, 사금융에도 돈을 빌려 재투자했는데 결국 모두 날렸고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올해 초 개인파산을 신청한 20대 후반 김모씨의 사연이다. 2020년 처음 가상자산 투자에 손을 댔다가 지난해 ‘루나 사태’ 이후 큰 손해를 봤다. 급전이 필요했던 김씨는 인터넷에서 개인회생을 검색했다가 불법사금융 광고를 보게 됐다. 김씨는 “구글에서 개인회생과 대출을 같이 검색했더니 대출 광고가 떠서 불법이라고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광고를 보고 스마트폰을 개통해 넘기면 한대당 60만원을 준다는 일명 ‘스마트폰깡’에 손을 댔다. 김씨는 그렇게 지난해 5월 총 8대의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400만원을 받았다. 소셜미디어(SNS) 메신저로 신분증 사본을 보냈고, 업체가 시키는 대로 휴대전화 본인 인증도 했다. 숨통이 트인 것도 잠시, 스마트폰 할부금이 청구된 다음 달부터 걷잡을 수 없이 빚이 쌓이기 시작해 결국 개인파산을 택했다.

한국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 역할을 할 20~30대 청년층이 빚더미에 신음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빚의 덫에 걸린 청년들은 상당수가 주식이나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폭락장에서 큰 손해를 봤다. 창업을 했다가 코로나19로 폐업을 한 청년 창업가나 취업난으로 학자금 상환을 못 해 더 높은 금리로 빚을 내는 취업 준비생도 있다.

빚에 시달리는 청년층이 계속 증가하면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갉아먹고 저출산과 같은 사회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20~30대 채무조정 신청자 60% 증가 전망

5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채무조정제도 신규 신청자는 6만3000여명에 달했다. 이 중 20~30대는 2만2000여명으로 35.4%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신청자 증가세가 가팔랐다. 20대 신청자는 2020년 1만4125명에서 2021년 1만4708명, 2022년 1만7263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1~4월 신청자 중 20대는 8043명으로, 3개월 만에 지난해 신청 인원의 절반에 육박했다. 30대 신청자도 지난해 한 해 동안 3만1202명으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는데, 올해 1~4월 신청자만 1만4345명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20~30대는 지난해와 비교해 6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신복위의 채무조정은 연체 기간에 따라 최장 10년(담보 35년)의 기간 동안 빚을 갚아나가면 이자와 원금을 탕감해 주는 제도다. 연체 기간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등으로 구분되는데, 올해 신속채무조정을 신청한 인원이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2020년 신속채무조정 신청자는 7166명이었지만, 올해 1분기 신청자만 1만4465명에 달했다.

신속채무조정은 대출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하고 있으나, 연체가 우려되는 사람과 1개월 미만 단기 연체자의 채무 상환을 유예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채무 상환을 곧 이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차주(대출받은 사람)들이 선택한다. 중저신용자가 많은 20~30대가 더는 대출을 받을 곳이 없어 빚을 빚으로 돌려막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특정 연령층에 리스크가 집중되는 것은 세대 간 갈등과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청년층이 미래 경제활동과 출산의 중추라는 점에서 청년층으로의 부채 리스크 이전은 각별히 주의해야 할 사안이다”라고 했다.

일러스트=이은현

◇ “일해서 빚 갚는 정책 만들어야”

서민 전용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 중 청년층이 이용하는 햇살론유스의 대위변제도 급증하고 있다. 주요 햇살론 상품의 누적 대위변제금액은 2020년 말 기준 1조3773억원이었지만, 이후 매년 평균 6000억원 이상 늘어 지난해 말 2조6076억원을 기록했다. 대위변제는 차주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이 이를 대신 갚아주고 대출 차주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연령별 대위변제 수를 보면 올해 1분기 20대가 1만367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대가 1만114명으로 다음 순이었다. 대위변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유스에서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햇살론유스 출시 첫해인 2020년 대위변제율은 0.2%에 불과했지만 2021년 2.9%, 2022년 4.8%로 상승했다. 올해 1분기 대위변제율은 5.5%, 누적 대위변제금액은 527억원에 달한다.

20~30대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는 것은 한국 경제 성장 동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연체 기록이 등록되면 정상적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고,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다.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돼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사회에서 낙오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청년층이 늘어나면 저출산·고령화 사회인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청년 수가 더욱 줄어들게 되고 저출산이나 세대 갈등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한계 상황에 직면한 청년 차주에게 기존 채무를 장기 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할 기회를 확대해 단기 상환부담을 경감하고 장기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도록 보조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20~30대의 채무조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영끌 투자’나 ‘빚투’를 한 청년층까지 국가 세금으로 채무조정을 해줘야 하냐는 반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보이는 목소리도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4년간 58만명의 빚을 탕감해 줬는데, 이 중 10만6000여명이 다시 채무불이행자(3개월 이상 연체)가 됐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단순 채무 탕감이 아니라 ‘일해서 빚을 갚도록 유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