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쳐 은행권 대출 연체율이 치솟자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NPL) 거래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은행은 장기 연체율 관리를 위해 장기 연체된 대출 채권을 전문기관에 매각한다.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역설적으로 NPL 시장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는 오는 9월부터 NPL이 시장에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코로나19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를 해준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37조615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기연장의 경우 36조1845억원, 상환유예는 1조4313억원이다.
만기연장은 은행과 협의해 오는 2025년 9월까지 늦출 수 있지만, 이자 상환유예는 오는 9월 종료된다. 5대 은행이 떠안고 있는 잠재 부실 대출만 37조6158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은행들은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여신의 경우 연체율 관리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나 연합자산관리공사(유암코)에 채권을 매각한다. 이들 공사는 NPL을 인수해 채무조정을 거쳐 인수가보다 많은 돈을 회수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유암코는 주로 부실기업 NPL을 매입하고, 캠코는 시중은행이나 공공기관, 가계, 기업 등에서 발행한 NPL을 사들인다. 구조조정 기업이 늘거나 은행권 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면 NPL 시장이 활성화된다.
이미 은행권 부실채권은 증가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국내은행 총여신에서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인 NPL 비율은 0.41%로 잠정 집계됐다. 전분기 대비 0.0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증가율은 낮지만, 분모인 총여신이 8조3000억원 늘어난 착시효과다. 이 기간 NPL은 3000억원(2.97%) 증가했다.
코로나19 금융 지원으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던 은행권 NPL 비율은 지난해 말 2년 9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대기업 여신(0.11%포인트 하락)을 제외한 모든 부문의 NPL 비율이 올랐다. 중소기업 여신과 중소법인·개인사업자의 경우 각각 0.04%포인트 상승했고, 가계 여신은 0.05%포인트 상승했다. 가계 여신 가운데 신용대출은 0.11%포인트 올랐다. 신용카드채권은 전 분기 말 대비 0.29%포인트 급등했다.
지난해 은행권 NPL 발행 규모는 1분기 1조8000억원에서 4분기 3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NPL 매각이 1.7배 늘었음에도 은행권 NPL 규모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지난해에는 NPL 매각으로 연체율을 낮추는 것이 가능했는데, 올해는 현상 유지도 어렵다”며 “은행이 매각하는 NPL보다 연체율 증가세가 더 가파르단 의미다”라고 했다.
캠코와 유암코는 NPL 인수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들 기관 모두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는 오는 9월부터는 대출 부실이 본격화해 NPL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NPL 발행이 늘어난다는 것은 영업으로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하는 부실기업이 증가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차주(대출받은 사람)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가계 대출 NPL만 올해 말 3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NPL 비율은 지난해 4분기 0.18%에서 올해 말 0.33%까지 급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금액으로는 같은 기간 1조7000억원에서 3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2년 이후 급락하던 NPL 비율이 갑자기 급등으로 전환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과 수준까지 진행될 것인지가 문제다”라며 “은행권은 거시 변수에 대해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NPL 비율 변화도 예의주시하는 한편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NPL(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
NPL은 돈을 빌리는 차주(자영업자·기업 포함)가 은행에서 주택이나 공장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갚지 못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을 뜻한다. 보통 은행은 분기마다 NPL을 정리해 건전성 지표를 관리한다. 이때 은행의 NPL을 싸게 사들여 경매 등으로 수익을 내는 곳이 NPL 투자 전문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