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오픈런’ 경쟁을 불러왔던 주택금융공사 적격대출의 올해 판매 실적이 급감했다. 급기야 3월에는 판매 실적이 0원으로 집계됐다. 주금공이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하며 적격대출의 단독 판매를 일시 중단하면서 실적이 떨어진 것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특례보금자리론 출시가 아니더라도 적격대출의 실적은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거래 절벽이 발생했고, 5%에 달하는 고정금리를 장기로 부담할 의향이 있는 이용자가 감소하며 적격대출의 판매 실적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감소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20일 주금공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적격대출 판매 금액은 569억원으로 집계됐다. 적격대출은 1월 486억원, 2월 84억원이 판매된 이후 3월에는 판매 실적이 전혀 없었다. 지난해 1분기 4653억원이 실행된 적격대출이 1년 만에 판매실적이 87.8%나 급감한 것이다.

적격대출의 판매 실적이 급감한 것은 금융 당국이 적격대출을 특례보금자리론으로 흡수해버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금공 관계자는 ”올해 적격대출 실적은 1월 말 특례보금자리론 신청 접수 시작 전까지 신청이 들어온 것이 2월까지 공급된 수치이다”라며 “적격대출이 안심전환대출에 포함되며 판매실적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격대출은 9억원 이하 집을 담보로 5억원까지 소득에 관계없이 장기고정 분할상환 대출로 빌리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일러스트=이은현

적격대출은 무주택자나 1주택자가 주택을 구입할 때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어 매해 인기를 끌었다. 보금자리론 등 다른 정책모기지보다 소득 및 주택 가격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만기도 최대 50년까지 설정할 수 있어 월별 상환 부담이 작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적격대출은 공급금액이 빠르게 소진됐다. 지난해 1분기에는 한 은행에서 적격대출이 판매를 시작한 첫날 곧바로 당월 한도를 모두 소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적격대출은 ‘오픈런’을 해야 한다는 수식어까지 붙을 정도였다. 시중 주담대 금리 상단이 6%를 넘어섰으나, 적격대출을 이용하면 3%대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어 서민층의 수요가 컸다.

올해 특례보금자리론 탓에 적격대출의 실적이 줄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적격대출은 특례보금자리론이라는 틀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올해 실적이 그리 좋지 않았을 것으로 금융권은 예상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적격대출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적격대출의 금리가 동반 상승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십년간 고정으로 높은 금리를 부담하려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적격대출의 금리는 지난해 2분기 4%에 진입하더니 하반기에는 5%에 육박했다. 올해 들어서는 5%마저 넘겼다. 1월 적격대출의 금리는 5.06%를 기록한 뒤 2월에는 5.13%까지 올랐다.

이달 1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뉴스1

금융 당국이 특례보금자리론을 설계하게 된 배경도 적격대출의 실적 전망을 밝지 않게 보는 이유다. 당국은 지난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적격대출의 수요가 줄어들고, 야심 차게 선보인 안심전환대출마저 신청이 저조해지자 적격대출과 안심전환대출, 보금자리론을 하나로 통합한 특례보금자리론을 만들었다.

주금공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종료되는 내년 이후 적격대출 판매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특례보금자리론이 목표한 공급량을 다 채우더라도 적격대출을 판매하는 대신 특례보금자리론의 공급 규모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주금공 관계자는 “적격대출을 포함한 내년도 정책모기지 운영방향은 올해 연말쯤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공급계획이 조기 달성되더라도 애초 발표한 대로 1년 동안 지속 공급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며, 이와 관련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