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 /조선비즈DB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금융지주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자 마진 감소 등으로 주력인 은행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건실한 보험사를 계열사로 갖춘 지주사는 실적 방어에 성공한 반면 은행 의존도가 높았던 곳은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보험 계열사 보유 여부에 따른 지주사들의 실적 명암은 향후 인수합병(M&A)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3월 임종룡 신임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후 비은행 금융사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금융지주는 증권사 대신 보험사로 먼저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KB금융, 손보사 실적 개선에 신한 제치고 ‘리딩뱅크’ 등극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금융지주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둔 곳은 KB금융지주였다. KB금융지주는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한 1조497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1조3880억원을 버는데 그친 신한금융지주를 제치고 ‘리딩뱅크’로 자리 잡았다.

KB금융의 실적 개선을 이끈 곳은 KB손해보험이었다. KB손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7% 늘어난 2538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반면 주력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은 금융 당국의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 축소 압박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취약 부문에 대한 충당금 증가로 순이익이 4.7% 감소했다.

KB손보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메리츠화재와 함께 국내 5대 손보사로 꼽히는 대형사다. KB금융 계열 생명보험사인 KB라이프생명도 지난해 1분기 55억원에서 16배 급증한 93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그룹의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올 1분기 금융지주사 순이익 현황/각 사 제공

KB금융에 리딩뱅크 자리를 내준 신한금융의 경우 보험 부문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생보사의 경우 대형사인 신한라이프를 갖고 있지만, 손보사인 신한EZ손해보험은 규모가 작고 온라인 영업에 특화돼 있어 그룹의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

NH농협금융지주 역시 보험사들의 실적 개선에 힘입어 이익이 크게 늘었다. NH농협금융은 올해 1분기 순이익이 94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8% 증가했다. 보험 계열사인 NH농협생명은 166.5% 급증한 1146억원, NH농협손해보험은 130% 늘어난 789억원의 순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 보험사 실적 전망 밝아

은행들은 올해 들어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점차 마무리되고 있는 데다, 이자 마진을 줄이라는 당국의 압박도 지속돼 지난해와 같은 호실적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증권사 역시 긴축이 지속되고 최근 경기 침체 우려까지 늘면서 눈에 띄게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반면 보험사들은 다른 금융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기 실적 전망이 밝은 편이다. 대부분이 장기 가입 상품이라 실적에서 경기 변동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고, 금융 당국의 개입 등 변수도 적다.

올해부터 회계기준이 IFRS17로 바뀐 점도 호재다. IFRS17은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점이 특징이다. 손익도 현금 흐름 대신 계약 전 기간으로 나눠 인식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특히 장기 보장성 보험의 비중이 높을수록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손보사들은 실적 개선 흐름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주력인 자동차보험의 경우 자동차 사고가 매년 줄어 손해율이 계속 개선되는 추세다. 또 장기손해보험과 일반손해보험의 가입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취임 전부터 증권사, 보험사를 인수해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강조해 왔다. 사진은 임 회장이 지난 3월 우리금융 신임 회장 취임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우리금융 제공

◇ 증권사 노리던 임종룡號 우리금융, 보험사에 관심

금융지주사들도 이런 추세를 고려해 보험사 M&A에 더 큰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매물도 많다. KDB생명과 ABL생명, MG손해보험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대형사인 롯데손해보험도 잠재적인 매물로 꼽힌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지만, 회사 규모가 크고 최근 손보업계의 이익성이 매년 개선되고 있어 매물로 나오면 여러 금융지주사가 인수 작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가장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낼 만한 곳은 우리금융이다. 우리금융은 지금껏 증권사를 우선 인수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지만, M&A 시장 상황과 경기 침체 여부 등 여러 여건을 고려하면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증권사 M&A 시장에서는 유안타증권 정도를 제외하면 매력적인 매물이 부족하다. 유안타증권마저도 지난해부터 줄곧 매각설을 부인하고 있다. 우리금융이 벽에 부딪힌 증권사 대신 매물이 풍족한 보험사 M&A로 선회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금융 시장에서는 이 밖에 손해보험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노리는 신한금융과 생보, 손보 모두 은행 등 다른 계열사에 비해 비중이 미미한 하나금융도 보험사 인수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