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KB GOLD&WISE the FIRST 센터에서 만난 김정혜 부센터장. KB GOLD&WISE the FIRST는 KB국민은행이 지난해 9월 선보인 최상위 고객을 위한 브랜드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총 9층으로 지어졌다. 15개의 고객상담실과 1400여개의 최신식 대여금고를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자산관리센터다. /허지윤 기자

“자산가들은 자산을 불리는 것보다 지키는 데 더 집중합니다. 보유 자산이 클수록 ‘안정’을 추구하지요. 저마다 자산을 키워온 방식은 다르지만, 대부분 잘 모르는 분야에 무모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최근 조선비즈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KB GOLD&WISE the FIRST 센터에서 만난 김정혜 부센터장(팀장)은 “자산가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돼 있다”면서 “지금은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면서 시장을 좀 더 지켜보고 기다리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수 검토 시점을 내년 상반기에서 내년 하반기로 더 미룬 고객도 있다”고 했다.

KB GOLD&WISE the FIRST 센터는 현금자산 최소 30억원 이상 보유한 초고액 자산가들이 이용하는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자산관리센터다. 비현금성자산까지 합치면 개인이 보유한 자산은 100억원대부터 1000억원대를 넘나든다. 이들은 어떻게 부를 축적해 왔냐는 물음에 “대부분 처음부터 부자인 경우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부센터장은 “자수성가형이나 주식, 코인 투자로 한순간에 운명을 바꾼 부자보다 가문 대대로 물려온 재산을 잘 지킨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재산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돈이 돈을 낳는 시스템 속에서 다양한 투자 상품과 투자 기법이 생겨났고, 무분별한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주변 사람의 달콤한 유혹과 개인의 욕망이 화(禍)를 부르는 일도 잇따른다. 그래서일까. 자산가들은 리스크 관리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철학과 기술을 일찍이, 잘 알려주는 데 공을 들인다. 김 부센터장이 요즘 자산가들의 트렌드로 꼽은 ‘유언대용신탁’도 그중 하나다.

유언대용신탁이란, 위탁자(피상속인)가 수탁자(금융회사)와 상속재산에 대해 신탁 계약을 맺고, 위탁자가 사망하면 생전에 미리 지정한 상속인에게 재산이 귀속될 수 있도록 정할 수 있는 제도다. 배우자에게 상가 월세를, 딸에게 주택 한 채와 상가 한 동을, 아들에겐 주택 한 채와 토지를 배분하는 식으로 신탁계약자로 수익자를 미리 지정하는 식이다. 김 부센터장은 “과거에는 부자들 사이에서도 유언신탁을 이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 최근 우리나라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 오어진

최근 자산가들의 주 투자처는 국채 등 채권과 미국 달러, 금 등 안전자산이다. 자산가들의 부동산 사랑은 여전하지만, 매수하기엔 여러 위험이 있어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 부센터장은 “잃어도 되는 돈은 없다”면서 “좋은 투자와 나쁜 투자를 가르는 것은 결국 시점(타이밍)이고, 아무리 좋은 상품도 매수 시점에 따라 나쁜 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가들은 가격이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투자의 기본 원칙과 부를 잘 유지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一 PB센터를 이용하는 고액 자산가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금리 인상 이후 시장에 다양한 리스크가 있다 보니 지금은 자산가들도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PB센터를 이용하는 자산가들은 원래 공격적인 투자보다 안전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며 위험 투자를 즐기는 일반 투자자들과 비교하면 보유 자산을 잘 지키는 데 초점을 둔다.”

一 자산가들은 부의 이전과 함께 자녀의 자산 관리에 대한 고민도 크다. 요즘 자산가들의 자산 대물림 트렌드는 뭔가.

“증여, 상속과 같은 부의 이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고 그 준비를 빨리 시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상품을 통해 상속을 설계하는 수요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점점 자산이 다양해지고 그 규모가 커진 데다, 가족 간 법적 분쟁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인식이 생겨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과거 유언신탁은 부자들 중에서도 소수의 영역이었다. 요즘은 자녀들이 먼저 나서기도 한다. 은행 PB센터를 이용해 온 자녀 고객이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려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가입하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자가 생존 중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했다가 사망 후엔 가족을 수익자로 설계하는 신탁으로, 유언장을 대신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세금 문제와 상속재산 분쟁을 미리 막으려는 목적이 크다. 유언신탁은 고객(위탁자)의 사망 이전에는 신탁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고객(위탁자)이 목적물을 관리하는 것이고,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의 생전에 이미 신탁 계약이 체결돼 있어 목적물의 관리를 수탁자(금융사)가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증여 공제 한도는 10년마다 재발생되기 때문에 10년마다 나눠 증여하는 게 세율 면에서 유리하다. 또 최근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는 부동산 증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데 임대소득 이전 면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전에 일찍 진행하는 것이 세금 측면에서 유리하다.”

一 최근 시장에는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와 저점 매수·투자 기회라는 심리가 동시에 있는데, 지난해와 비교해 자산가들의 투자 경향이 좀 바뀌었나.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나, 투자 여력이 충분한 자산가 사이에서도 ‘지금은 시장을 관망해야 할 때”라는 심리가 커져 있다. 현재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만한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가 올 가능성이 우세한 분위기까지는 아니지만, 변동성이 크다 보니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사태, 유가 급등 등의 영향으로 안전자산인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사진은 한 은행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뉴스1

一 지난해 자산가들은 미국 달러 등 외화 보유 비중을 확대했다. 현재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높은 수준인데, 올해도 자산가들이 달러 보유 비중을 늘릴 것으로 보나.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와 금 투자가 증가했고, 미국 금리가 급등하는 과정에서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환차익을 보게 된 고객이 많다. 다만 현시점에서는 환율 수준상 달러 비중을 더 늘리기엔 부담이 있어, 달러 비중의 변동보다는 ‘유지’를 택할 것으로 본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분산 투자’ 개념으로 자산의 일정 비율을 달러로 보유하는 접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런 분산투자 개념의 달러 수요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 생각한다.”

一 올해 1분기 재테크 히트 상품은 무엇이었나.

“많은 자산가가 채권을 적극적으로 샀다. 리스크 대비 수익률 면에서는 장기 국채가 가장 낫다. 장기 국채의 경우 표면금리가 낮아서 이자소득세가 적고 금리인하에 따른 매매 수익 발생 시 차익은 과세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장기 채권일수록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이 커지기 때문에 국채 장기물 수요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3개월 사이 80%가 넘는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2차전지 ETF가 단연 히트상품이다. 다만 너무 짧은 기간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지금 가격은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一 자산가들의 올해 목표 수익률은.

“투자 성향에 따른 개인차가 큰데 채권투자 비중이 큰 경우 4~5% 수준, 파생 상품 등 투자상품 비중이 큰 경우 5~10% 수준으로 잡고 있다.”

一 올해 위험한 투자처는.

“부동산이다.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부담과 경기 하락 이슈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급매물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좋은 물건과 적정 가격에 대한 결정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특히 수익형 부동산의 경우 상권 분석의 오류, 소비 트렌드 변화 등으로 안정적인 임대소득과 가격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투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과거엔 ‘부동산 불패’라는 인식 하에 각종 부동산을 서슴지 않고 사들였던 고객들도 지금은 수익성을 꼼꼼히 따져 매물을 검토하는데, 매수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