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2금융권의 파킹통장(수시입출금) 금리가 내리자 만기가 짧은 정기 예·적금 상품으로, 증권가에서는 단기성투자상품인 MMF(머니마켓펀드), CMA(종합자산관리계좌)로 돈이 이동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파산에 이어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스위스(CS)가 매각되면서 금융 위기 공포와 금리 인하 가능성에 투자 수요가 단기 자금 운용 상품으로 몰리고 있는 것인데, 투자자들이 방망이를 짧게 잡는 방어 투자를 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1개월만 예치해도 3%대 금리를 주는 초단기 예적금 상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KDB산업은행의 3월 31일 기준 ‘KDB정기예금’ 금리는 1개월 이상~2개월 미만 약정 시 연 3%(세전) 금리를 적용한다. ▲2개월 이상~3개월 미만은 연 3.05%, ▲3개월 이상 4개월 미만 연 3.1%, ▲4개월 이상 5개월 미만 연 3.15%, ▲5개월 이상 6개월 미만 연 3.2%, ▲7개월 이상 8개월 미만 연 3.33% 등의 금리를 제공한다.

지난달 31일 기준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의 정기예금도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까지 예치하면 적용하는 금리가 연 3%다.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은 연 3.2% 6개월 이상 12개월 미만은 연 3.3%다.

케이뱅크의 정기예금의 1개월 만기 금리도 연 3%다. 1개월(30일) 이상 3개월 미만(90일)만 돈을 넣으면 금리를 연 3% 제공한다.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은 연 3.3%, 6개월 이상 12개월 미만은 연 3.4%, 12개월 이상은 연 3.7%를 적용한다. IBK기업은행의 만기지급식 정기예금 ‘실세금리 정기예금’은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약정 시 세전 연 2.95%의 금리를 지급한다.

그래픽=손민균

반면, 금리 인상기 고객 유치를 위해 은행과 저축은행이 경쟁적으로 올렸던 ‘파킹통장(수시입출금)’ 금리는 내렸다. 웰컴저축은행의 ‘웰컴 직장인 사랑 보통예금 금리’는 3.5%, SBI저축은행 사이다뱅크가 한달에 한번 이자를 지급하는 ‘SBI 입출금통장’ 금리는 연 2.8%다.

지난해 하반기 연 4%까지 올랐던 파킹통장 금리가 이제는 은행이 취급하는 초단기 정기예금 금리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2금융권 파킹통장에 목돈을 맡겼던 금융소비자들이 은행권 단기 정기예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의 정기예금 통장을 개설했다고 밝힌 직장인 김모씨(35)는 “그동안 1금융권 은행은 월 이자를 주지 않아서 2금융권(새마을금고, 지역농축협 등) 예금을 이용했는데, 미국 SVB 사태를 보며 불안감이 생긴 와중에 은행권에서도 월 이자를 주니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도 초단기 예적금상품을 잇달아 출시할 전망이다. 단기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한국은행이 4월 1일부터 ‘금융기관 여수신 이율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소비자가 1개월 만기 초단기 적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영향이다. 하나은행은 오는 7일 적금 만기 1개월 상품인 ‘하나 타이밍 적금’을 내놓는다. ‘하나원큐 앱’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 이번 상품은 연 최대 3.95% 금리를 제공한다. 다만, 가입 금액은 50만원 이하(타이밍 버튼 입금한도 시 최대 65만원)로 제한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만기가 짧거나, 월 이자 지급 상품 등 듀레이션(잔존 만기)이 짧은 상품을 선호하자, 수요에 맞춰 단기 자금 운용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증권사들이 취급하는 단기성 자금 운용 상품인 CMA·MMF도 자금 유입이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29일 기준 CMA 계좌 잔액은 62조767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잔고는 57조5000억원대였는데, 시중 자금이 모이면서 잔고가 늘었다. 국내 MMF형 잔고는 2조4643억원으로, 지난해 말(2조3964억원) 대비 늘었다.

은행권 예적금 등 수신 상품보다 높은 수익률과 안정성을 추구한 수요자들이 CMA, MMF에 자금을 맡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가 등 해외 시장에서도 MMF로 자금유입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MMF로 몰린 자금은 2860억달러(약 371조8000억원) 규모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SVB 뱅크런 사태 발생 초반에는 대형, 중소형 은행의 예금 인출이 동시에 나타났다가 최근엔 대형으로 예금이 이동 중이나, 미국 상업은행의 예금금리는 기준금리를 크게 밑돌고 있다”면서 “MMF 등 단기자금시장의 자금 쏠림 현상(역레포·Reverse Repo)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CMA는 현금성 예탁금을 환매조건부 채권(RP)형, 한국증권금융 예수금(WRAP·랩)형, 발행어음형 등으로 단기간 투자 운용하는 상품이다. 은행 예금과 유사하게 자금 입출금, 급여이체, 공과금 납부, 체크카드 이용 등 기능이 있다. 최근 증권사의 CMA 약정 기간은 31일이다. 약정기간이 지나면 경과시점의 공시된 약정 수익률로 환매 또는 재투자한다.

MMF는 펀드로, CMA의 여러 운용 대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투신사가 고객들 자금을 모아 만기 1년 이내의 국공채나 기업어음(CP),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우량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되돌려주는 실적 배당 상품이다. 개인고객은 즉시 입출금이 가능하지만, CMA와 달리 계좌이체 등은 불가능하다.

CMA·MMF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은행 예적금과 달리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종합금융사(종금형)가 취급하는 CMA의 경우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된다.

중소형은행에서 대형은행으로, 은행 예금에서 MMF로 자금의 빠른 유출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중소형은행에서 대형은행으로, 은행 예금에서 MMF로 자금이 이동하는 과정이다”라면서 “SVB 사태 이후 첫 주는 은행 대출이 소폭 늘어 급격한 신용 위축은 없었지만 점진적으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당장 예금 인출에 직면하지 않았어도 중소형은행에서 대형으로, 대형은행 예금에서 MMF로 자금이 이탈하려는 꾸준한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예금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는데, 이로 인해 대출금리를 함께 높여야 할 유인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하반기 신용 사이클을 위축시켜 금리 인상의 긴축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