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애플페이가 출시 하루 만에 등록 100만건을 넘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한국 카드 발급 파트너인 현대카드는 속 시원히 말을 못하는 상황이다. 카드업계에서는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들여오기 위해 계약 중 비밀유지조항을 넣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족쇄가 됐다고 보고 있다.

26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현대카드가 애플페이 도입설이 나온 지난해 9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애플페이와 관련해 공식으로 낸 보도자료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카드업계는 애플페이 홍보에 현대카드가 의외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로 계약상 비밀 유지 조항을 꼽는다.

현대카드가 홍보에 열을 올리지 못 하는 이유는 애플이 특히 정보 유출의 민감한 기업 중 하나기 때문이다. 애플은 과거부터 여러 협력사와 계약 내용과 관련해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애플이 신사업에 진출할 때 물망에 오르는 기업도 비밀주의로 인해 차질을 겪거나 심할 경우 계약을 파기하기도 했다.

애플 특유의 이 ‘비밀주의’는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 전 최고경영자의 철학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데, 애플은 잡스 생전에 파트너사와 애플 직원에게 ‘비밀 유지 계약(NDA·Non Disclosure Agreement)’을 고수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21년 애플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협업 기업을 찾아 나설 때, 국내 기업으로 현대·기아차와 손을 맞잡는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결국 불발에 그쳤다. 당시 CNN 등 주요 외신에서는 두 자동차 기업이 관련 논의를 중단한 것에 대해 애플 특유의 ‘비밀주의’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평했다. 만일 애플과 계약을 맺게 되면 애플이 관련 상품과 관련해 정보 유출 방지는 물론 홍보, 마케팅 등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21일 서울 한 애플 스토어에 안내문이 놓여 있다. /뉴스1

현대카드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애플페이가 출시 하루 만에 이용 인원 수십만명을 끌어모으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현대카드는 함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애플페이 도입설이 국내에서 나올 때도 애플이 이에 대해 경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애플페이 도입 이후로도 애플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 현대카드로서는 난감할 것”이라고 했다.

현대카드로서는 애플페이를 도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했지만 정작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무선통신단말기(NFC) 설치 비용부터 제휴 업체들까지 찾아가는 등 온갖 궂은일은 현대카드가 도맡아서 했으나 정작 홍보에 사용하기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칫해서 정보를 유출할 경우, 막대한 위약금을 애플에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현대카드를 움츠리게 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애플의 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GT어드밴스드테크놀로지스가 애플을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애플은 비밀유지 계약 사안 위반이 1건당 발생할 때마다 5000만달러(약 646억원) 정도를 요구했다고 한다. 현대카드의 경우, 이보단 덜 할 것으로 보이나 그래도 그 위약금의 규모는 아마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도입하기 위해 1년 독점 계약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을 기울였으나 애플 허락 없이는 마땅히 홍보도 할 수 없다”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답답할 노릇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