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금융권 대환대출 인프라를 구축할지 고심하고 있다. 오는 5월부터 대출 상품을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돕는 대환대출 인프라가 가동된다. 은행권은 대출 상품이 한데 모인 ‘대출 백화점’ 격인 대환대출 플랫폼에 상품만 공급하는 입점 업체의 역할만 할지, 더 나아가 모든 상품을 다루는 백화점의 역할까지 확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대출 플랫폼을 만들면 대출 상품 경쟁이 과도해지고, 영업점을 통한 대출 상품 판매가 저조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민의 바탕에 깔려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하나·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은 금융권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자로 참여할지 내부 검토 중이다. 일부 시중은행은 대환대출 플랫폼을 구축하고 보험·카드 등 계열사의 대출 상품을 탑재하는 등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만약 플랫폼 사업자가 되겠다고 하면 다른 금융사의 상품만 넣으면 바로 플랫폼을 가동할 수 있는 단계다.
한 은행 관계자는 “플랫폼 구축이 결정되면 곧바로 출시할 수 있는 상태다”라며 “내부적으로 플랫폼 사업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현재 시중은행 중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자로 참여한 곳은 신한은행뿐이다. 시중은행이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는 것은 대출 상품 경쟁 체제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대환대출 플랫폼은 23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곳에서 이미 치열한 대출 금리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진해서 이 경쟁의 판을 깔아줄 무대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겠냐는 의견이 은행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영업점의 경쟁력 하락 때문이다. 온라인 대환대출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그동안 대환대출의 주 무대였던 영업점의 실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수의 영업점을 가진 은행일수록 온라인에서 대환대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영업점의 경쟁력이 감소하게 된다. 온라인에 기반한 인터넷은행, 핀테크 등과의 차별성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환대출 플랫폼을 만들면 영업점의 경쟁력이 하락될 것으로 우려된다”라며 “보험으로 치면 설계사가 있는데 회사가 나서서 보험대리점(GA)을 만드는 격이라서 고민이 깊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빅테크나 다른 핀테크에서 만든 대환대출 플랫폼에 참여하는데, 굳이 은행이 나서 그 경쟁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보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시중은행은 대환대출 플랫폼을 구축할 때 얻을 수 있는 실익에 대한 고민도 크다. 대환대출 플랫폼에 신용대출을 시작으로 주택담보대출까지 들어오는 상황에서 단순히 상품만 공급하면 빅테크 등에 종속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플랫폼 구축을 통해 입점 금융사에 일정 수수료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환대출 인프라가 본격 가동하는 5월에 바로 플랫폼을 구축하지 않아도 되니 플랫폼 사업자로 나설 경우 얻을 수 있는 실익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