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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급여를 받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13월의 월급이라 불리는 ‘연말정산’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40대 박모씨는 “지난해 지출이 많아 돈을 모으지 못했는데,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더 뱉어낸다”면서 “올해는 각종 물가가 다 올라 소비를 줄일 계획인데, 올해도 세금 환급은커녕 더 내게 될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 그간 연금저축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만들지 않았다.

금융 전문가들은 “소득 활동을 하는 기간에 연금저축이나 IRP 등 세제 적격 상품에 우선 가입해야 한다”면서 “올해부터 바뀌는 연금 세제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세액공제 한도 연 900만원으로 확대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IRP와 연금저축 등 연금 상품의 가장 큰 혜택이 세액공제다. 개인별 산출세액에서 공제 금액만큼 빼는 것이다. 진형숙 우리은행 PB팀장은 “IRP 등 연금 계좌는 연말정산 세액 공제와 운용수익의 과세이연, 퇴직소득세 절세, 연금소득 저율과세 효과를 챙길 수 있는 상품이다”라며 “절세와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부터 IRP와 연금저축 등 연금 계좌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납입 한도가 기존 연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확대됐다. 연금저축만 있다면 최대 600만원까지, IRP는 900만원까지 공제된다. 이 때문에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의 연금 고객 유치 경쟁도 한층 뜨겁다.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더 내지 않고 돌려받기를 기대한다면, 개인연금 계좌에 연 900만원까지 넣는 게 가장 먼저할 수 있는 방법이다. 1년 총급여 5500만원 이하(종합소득 4500만원 이하)인 경우 세액공제율은 16.5%, 1년 급여 5500만원 초과인 경우 세액 공제율은 13.2%로, 각각 최대 세액공제액은 148만5000원, 최대 118만8000원이다.

세액공제 납입 한도 900만원을 초과한 금액도 소득과 상관없이 최대 1800만원까지 넣어 운용할 수 있다. 단, 추가 납입 금액을 통해 발생한 운용 수익에는 3.3~5.5%의 연금소득세가 부과된다. 만약 연금 계좌가 아닌 일반 계좌를 통해 자금을 운용하면 15.4%의 이자·배당 소득세를 내야 한다.

백혜경 하나은행 VIP PB팀장은 “소득활동 기간에는 연말정산 세액공제금액(올해 기준 연 900만원)과 그 이상을 목표(연 1800만원 한도금액 수준)로 IRP, 연금저축 등 세제적격상품에 입금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잡기를 권한다”면서 “이와 함께 비과세 연금보험 상품도 먼저 비중 있게 채워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꼼꼼히 챙겨야 할 수수료·위험·수익률

IRP에 편입할 수 있는 상품은 예금,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등으로 투자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다. IRP계좌에 넣어둔 돈, 즉 원금 보장을 원한다면 은행 예적금과 같은 원금 보장 상품을 택해 운용지시를 해야 한다.

IRP를 가입할 때는 수수료도 따져봐야 한다. 계좌 개설 이후 연금 수령 시까지 장기간 소요돼 운용 수수료가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창구에 가지 않고 온라인(비대면)으로 IRP 계좌를 개설하면 수수료를 면제해주거나 경품을 제공하는 등의 이벤트를 하는 금융사도 많다. 하지만 금융사별로 연간 운용관리와 자산관리에 대한 수수료를 나눠 부과하는 경우도 많은 데다 납입 규모나 기간에 따른 세부 수수료율이 달라질 수 있어 잘 살펴봐야 한다.

IRP는 저축 기간이 5년 이상이 된 가입자가 만 55세가 넘었을 시점부터 수령할 수 있다. IRP에서 중도에 자금 인출이 예상되는 경우, 퇴직급여와 자기부담금을 각각 별도 계좌로 관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IRP는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전세보증금 ▲근로자 및 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 ▲개인회생·파산 ▲사회적 재난 등 법정 사유를 제외하곤 필요한 만큼 일부 인출이 안 되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계좌 전체를 해지하면 퇴직소득세와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이를 방어할 방법이 IRP 계좌를 2개로 관리하는 것이다. IRP 계좌 개설은 1사, 1계좌 즉 한 금융사에서 하나만 개설할 수 있는데, A금융사의 IRP와 B금융사의 IRP를 각각 만들어 급전이 필요하면 이중 하나를 해지하고 한 계좌는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돈만 넣어두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개인 성향에 따라 관리하면서, 수익률도 신경 써야 한다. IRP 계좌를 통한 ETF 거래의 경우, 증권사와 은행·보험사 간 매매 방식에 차이가 있다. 증권사의 경우, 가입자가 ETF 실시간 거래 및 매수·매도 호가 지정이 가능한 반면, 은행과 보험사의 경우, 가입자의 실시간 거래 및 매수·매도 호가 지정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증시 부진의 영향으로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대부분의 1년 운용 성적이 악화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을 통해, 지난해 4분기 기준 IRP 계좌 평균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원리금 보장 상품은 2%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원리금 비보장 상품의 경우 KB증권(-19%), NH투자증권(-16%), 대신증권(-15%), 미래에셋증권(-18%), 삼성증권(-17%), 신영증권(-13%), 신한투자증권(-19%), 유안타증권(-19%), 하나증권 (-17%) 등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연금 계좌 특성상 단기 수익률보다 장기 수익률이 더 중요하다. ETF를 꾸준히 운용할 계획이라면, 한 번에 사들이는 것보다 시기를 나눠 분산 매수하는 것이 수익률 방어에 더 효과적이라는 전문가 조언도 있다.

5대 은행의 지난해 4분기 원금보장 기준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확정급여(DB)형 1.64%, 확정기여(DC)형 1.88%, IRP 1.67%에 그쳤다. 현재 DC형과 IRP계좌에서는 위험자산 비중을 최대 70%로 제한하는데, 나머지 30%를 채권형, 채권혼합형으로 구성하는 포트폴리오도 제시되고 있다.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는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지시가 없어도 사전에 지정한 운용방법으로 자동으로 선정, 운용하는 제도다. 방치되기 쉬운 가입자들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게 주목적이다. 가입자는 자신의 투자성향에 맞춰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상품 중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운용사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에 따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알아서 조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