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최근 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와 손잡고 국내에 신규 가상자산거래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가상자산업계와 정부, 정치권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 측은 최근 바이낸스와 합작법인을 세우고 정부와 금융 당국 등에 신규 가상자산거래소를 설립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발행사와 물류 관련 블록체인 업체 대표 등이 이 명예회장을 도와 가상자산거래소 설립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시장은 업비트가 88%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만약 이 명예회장이 추진하는 가상자산거래소가 설립 허가를 받을 경우 가상자산거래소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20여년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던 이 명예회장의 네트워크에 바이낸스의 자본력과 경영 노하우가 접목되면 업비트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 2018년 11월 “청년 창업가로서 제2의 삶을 살겠다”며 갑작스럽게 코오롱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퇴임 후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는 코오롱모빌리티와 낚시 관련 스타트업인 어바웃피싱 등의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명예회장은 블록체인 사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드러냈었다. 그는 퇴임 당시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앞으로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자율주행과 공유경제 등 산업 생태계 변화에 올라타면 살고, 뒤처지면 도태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최근 블록체인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 기술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 중장기 전략을 보고 받으면서 이를 느끼고 퇴임 결정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언론인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나 블록체인을 공부했다”며 “앞으로 4차 산업 분야 인사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코오롱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3년여간 이 명예회장은 실제로 국내외 가상자산,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과 교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예회장이 추진하는 가상자산거래소 설립 프로젝트가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신규 가상자산거래소가 사업을 시작하려면 금융 당국으로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금융 당국 내부에서 바이낸스의 국내 진출에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는 지배구조와 재무정보, 수익 창출 방식 등 대부분의 회사 정보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국계 캐나다인 자오창펑이 설립해 서류상 본사가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바이낸스와 마찬가지로 조세회피처인 바하마에 거점을 둔 세계 3위 거래소 FTX가 지난해 11월 파산하면서 각국 금융 당국의 바이낸스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FTX도 대부분의 경영 정보가 미공개 상태였고, 미국과 유럽 등의 규제 당국에서 제대로 된 관리와 감독도 받지 않아 결국 유동성 위기를 겪고 침몰했다.
바이낸스는 현재 국내 5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고팍스의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바이낸스가 경영난을 겪는 고팍스의 급한 불을 꺼줘 정부와 금융 당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신규 거래소 허가를 받아내는 ‘빅딜’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가상자산거래소는 국내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제공도 받아야 하는데, FTX 파산 사태 이후 은행에서도 제휴에 소극적인 분위기다”라며 “이 명예회장의 거래소 설립이 현실화할지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